[사설] 스펙보다 능력위주 채용이 학력사회 벽 허문다

입력 2014-03-24 02:01

최근 대기업과 은행권에 확산되고 있는 스펙을 초월한 채용 방식은 바람직한 변화다. 국민·신한·우리은행 등이 올해 입사지원서를 쓸 때부터 자격증, 봉사활동, 인턴십 경력, 해외연수 경험 등을 삭제하거나 당락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 포스코 CJ 등은 사진, 학점, 부모 주소, 제2외국어 능력, 전공표시란 등을 없애거나 블라인드 면접 방식을 도입했다.

취업용 스펙을 쌓기 위해 졸업을 미루면서 4년제 대학을 5∼6년씩 다니고 취업 재수, 삼수를 하며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한다면 진작 바뀌었어야 했다. 청년층 노동단체인 청년유니온이 2012년 대학 졸업자 35명의 이력서를 토대로 추산한 대졸자 평균 스펙 비용은 4269만원에 달한다. 2802만원의 대학등록금을 빼더라도 해외연수에 1108만원, 토익 등 자격증 응시료와 학원비에 169만원 등이 소요된다. 대학등록금을 대기도 벅찬데 사회적 비용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대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57.3%에 달한다니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교육 광풍이 끝이 없다.

기업이나 은행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직원은 돈으로 만들어진 모범생이 아니라 창의력과 도전정신, 끼를 갖춘 인재다. 문제는 수만∼수십만명씩 몰리는 지원자 가운데 능력 있는 인재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우수한 인재를 가리려는 노력과 고민은 계속돼야 한다. 당장 눈앞의 채용 비용을 줄이자고 학벌이나 학점, 어학 성적 등 단순 자료만 갖고 인재를 가려내면 장기적으론 기업이나 은행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학벌보다 창의성과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자주 얘기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호언장담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스펙 대신 능력을 중시하는 채용은 학벌위주 사회를 허무는 첫 걸음이다. 대학 진학률이 29%밖에 안 되는 데도 탄탄한 직업교육으로 최상위 국가경쟁력을 유지하는 스위스나 대학을 중퇴한 스티브 잡스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