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나래] DDP와 하이라인
입력 2014-03-24 02:20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22일 문을 열었다.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는 도심에 불시착한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외관이 인상적이다. 개관에 앞서 11일 방한한 하디드는 “지형, 역사적인 특성이 반영된 독특한 건축물이 나왔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한양 도성과 동대문 재래시장, 고교 야구가 펼쳐지던 추억 같은 ‘동대문의 기억’을 DDP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궁금해서 DDP 홈페이지에 가봤다. ‘DDP 건축 스토리’란 코너가 있긴 하나 ‘대한민국 최첨단 공법의 집약체이자 세계 최대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란 설명 외에 눈을 잡아끄는 스토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이라인 스토리’(푸른숲)라는 책이 나왔다. 30년간 흉물스럽게 버려졌던, 뉴욕 맨해튼을 관통하는 2.4㎞의 고가 철도 하이라인이 ‘시민의 힘으로’ 하늘정원이 되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프리랜서 기고가 조슈아 데이비드와 컨설턴트로 일하던 로버트 해먼드.가 1999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개최한 하이라인 철거 논의 공청회에서 만나 철거를 막기로 의기투합하고, ‘하이라인 친구들’이란 시민단체를 만들어 뉴욕시를 설득해 꿈을 이뤄낸 10년간의 분투기다.
영화배우 에드워드 노튼이 관심을 표명한 뒤 이들과 함께 철조망을 비집고 답사를 다닌 이야기 등 흥미로운 사연이 가득하다. 하이라인 설계 공모에 DDP 설계자인 하디드가 식물 하나 없는 흰색 일색의 조경으로 응모했다 탈락한 뒷이야기도 들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책머리에 쓴 추천사에선 하이라인에 대한 부러움이 은연중 느껴진다. 2009년 6월 개장한 이곳이 이토록 짧은 순간에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데에는 이런 스토리의 힘이 컸다고 한다.
그렇다면 ‘동대문 스토리’를 지워버린 DDP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4840억원을 쏟아 부어 만든 이 건축물이 끔찍한 흉물거리로 전락하지 않길 바란다. 박 시장은 2015년도부터 운영비 320억원을 자체 조달해서 더 이상 세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지만 글쎄, 그 말을 긍정적으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런 점에서 DDP는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오세훈 전 시장의 용감한 결정(?)을 둘러싸고 책임 공방만 벌이다 끝나선 안 된다. DDP를 어떻게 활용할지, 서울시민들과 새로운 DDP 스토리를 어떻게 써나갈 것인지, 비전으로 승부하는 후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김나래 차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