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통일의 길 찾다] 朴대통령,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통일의 문’ 연다

입력 2014-03-22 02:39


1964년 겨울. 아버지는 회색 장벽이 둘러쳐진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옆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분단된 독일에서도 도시 자체가 자유주의 대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뉜 베를린의 한가운데, 이 문 앞에서 아버지는 “동베를린 쪽을 보니 북한 생각이 났다”고 했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필 ‘방독 소감’에서 “그래도 ‘자유 베를린’ 사람들은 장벽이 제거되는 그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통독을 위한 독일 국민들의 염원은 열렬하다”고 썼다.

50년이 지난 2014년 3월 26일. 딸 박근혜 대통령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찾는다. 1788년 프로이센 제국이 건설한 이 문은 수난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단일민족국가의 상징이었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독이 분단되면서는 승전국 미국과 러시아에 의해 한 도시를 반쪽 내는 동·서 베를린의 경계로 둔갑했다. 냉전시대 당시 동·서 베를린 사람들이 당국의 허가를 받고서만 드나들 수 있었던 출입문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89년 이후로는 통일의 아이콘으로 변모했다. 세계 최고 경제대국 중 하나로 우뚝 솟은 21세기 통일독일 자체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바로 이곳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독일의 저력을 확인하고 한반도 통일을 위한 새로운 구상을 다질 것으로 관측된다. 아버지의 베를린 입성 소회가 “(남북)통일을 위한 힘을 배양하는 데 모든 국민이 분발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면, 박 대통령의 일성은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 놓인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상이 바라보는 통일된 독일의 저력이 우리 것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말이 아닐까.

이어 같은 여성 지도자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통일외교 협의채널을 비롯한 양국 간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를 망라한 전방위적 통일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국민일보 3월 5일자 1·3면 참조). 분단시대 목회를 위해 동독으로 건너간 서독 출신 목사의 딸인 메르켈 총리는 본인 자체가 통독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이어 27일 동독지역의 드레스덴시도 방문한다. 2차대전으로 폐허가 됐다 다시 동독 사회주의에 신음하던 이 도시가 통독 이후 어떻게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는지를 고찰할 예정이다. 통독 효과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이곳. 그중에서도 이 도시의 성장동력을 상징하는 드레스덴 공대에서 대학생들에게 연설할 계획이다. 연설의 내용은 이른바 ‘드레스덴 선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통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담겠다는 포석이다.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지금까지 국내문제에 불과했던 한반도 통일이라는 화두를 국제사회의 핵심 의제로 격상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23일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네덜란드 헤이그를 방문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한·미·일 3자 정상회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양자 정상회담 등을 가진 뒤 25∼28일 독일을 국빈방문한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