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개똥이에 담긴 지혜

입력 2014-03-22 02:18


알레르기, 천식, 알츠하이머병, 우울증, 소아당뇨병으로 불렸던 제1형 당뇨병 등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현대적이고 청결한 위생상태에서 사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발병률이 더 높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을 과학계에서는 ‘위생가설’이라 한다. 즉, 현대인이 과거와는 달리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 성장함에 따라 병원체,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감염과 접촉이 없어져서 이 같은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졌다는 설이다.

통계에 의하면 소나 돼지 등과 함께 생활하는 후진국 농촌 아이들이 선진국에 사는 도시 아이들보다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린다. 또 집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아이들일수록 알레르기 발생률이 낮으며, 기생충 감염률이 높을수록 알레르기 및 천식 발생률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면역의 발달을 저하시키는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위생, 전염성 질병, 도시화 수치 등의 요인에 따라 발병률이 국가 간에 42.5%나 차이가 난다. 우울증의 경우 토양 속에서 서식하는 한 박테리아 종류가 치유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제1형 당뇨병은 기생충의 감염이 발병률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밖에 위생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발표됐는데, 질병 진단율 등의 문화적 차이를 감안할 경우 무의미한 연구결과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런데 최근 위생가설의 이면에 숨어 있던 메커니즘을 밝혀낸 매우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애완견을 키우는 집에서 채취한 먼지가 섞인 물을 마신 실험쥐들은 애완견을 키우지 않는 집에서 채취한 먼지가 섞인 물을 마신 쥐들과 비교해 알레르기 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이 연구를 진행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SF)의 수전 린치 교수팀이 두 실험쥐 그룹 간의 차이를 조사한 결과, 애완견의 집먼지를 먹은 쥐들은 위장관에서 L. johnsonii라는 세균이 다량으로 검출됐다. 연구진이 이 세균을 다른 실험쥐들에게 먹인 결과 알레르기 반응이 감소하며, 천식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천식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애완동물을 기르는 아이들일수록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리는 이유가 명확히 밝혀진 셈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얼굴에 검댕을 칠하거나 일부러 거지 옷을 구해서 입히는가 하면 개똥이 같은 천한 아명을 지어서 부른 풍습이 있었다. 우연의 일치치곤 너무나 과학적이었던 선조들의 지혜가 아닌가.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