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목마른 스리랑카에 ‘생명의 물’ 건네다
입력 2014-03-22 02:59
고인물 식수 사용으로 만성신장병 고통
스리랑카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원조를 주는 국가였다. 당시 우리 사회 교과서에는 ‘콜롬보 플랜’에 대한 설명이 실리기도 했다. 스리랑카의 수도 이름을 딴 콜롬보 플랜은 스리랑카 등 ‘잘나가는’ 7개국이 아시아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원조를 제공하는 국제기구였다. 적잖은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이 기구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유학을 갔다. 그러나 70년대부터 국유화 등 사회주의 정책 부작용과 80년대 이후 내전까지 겹치면서 스리랑카는 뒤처지기 시작했다. 2009년 내전이 종식되면서 스리랑카는 경제 재건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사회 인프라는 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우리나라는 스리랑카에 지금까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해 25개 사업, 5897억원을 지원했다. 지원 규모로 볼 때 전체 52개국 중 5위에 해당되는 큰 비중이다.
지난 12일 오전, 수도 콜롬보에서 100㎞ 정도 떨어진 골(Galle) 광역시에 위치한 상수도 정수장. 약 1만5000㎡의 정수장에서는 취수장에서 받은 물을 걸러 배수지로 보내는 공정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골 지역은 2005년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어 전통적으로 물이 부족한 곳이었다. 그러나 1999∼2008년 10년 동안 이뤄진 골 광역시 상수도 개발사업으로 주변 20만명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있다.
사업비용 6600만 달러는 EDCF로 마련됐다. EDCF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인프라를 지원하기 위한 장기저리 차관을 제공하는 사업을 위해 조성된 기금이다. 이 사업은 이율 연 2.5%에 상환기간은 30년으로 좋은 조건이다. 코오롱글로벌이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2008년 이후 이 정수장의 유지·관리를 맡고 있는 위제시리씨는 “코오롱 측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은 뒤 5년 동안 고장 한번 없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골 지역에서 다시 차로 2시간여를 달려 함반토타 광역시의 루후누푸라 상수도 개발사업 현장을 찾았다. 스리랑카 정부의 남부 지역 핵심 개발계획에 따른 필수적인 식수 공급을 위해 2011년부터 시작된 사업으로 오는 5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 지역 주민 나알세느 농업인대표는 “우물물로 식수를 사용하면서 위생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면서 “곧 깨끗한 물을 공급받을 것이란 생각에 주민 모두 들뜬 상태”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스리랑카 정부의 한국 기술력에 대한 신뢰는 매우 높다. 콜롬보 상하수도부 청사에서 만난 아베이쿠나세카라 차관은 “한국 EDCF 사업의 장점은 차관 조건이 좋고 한국 기업의 기술력도 뛰어나다”면서 “스리랑카 인프라 개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상하수도를 담당하는 부처가 따로 있을 정도로 상수도 보급률이 50%에 못 미친다. 보급률을 현재 46%에서 2020년 9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골과 함반토타 지역의 상수도 개발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스리랑카 정부는 더 낙후된 중부지역 상수도 인프라 개발에도 EDCF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쿠르네갈라 지역은 상수도 보급률이 9%에 불과해 10만2000명의 주민 중 700명이 만성 신장질환을 앓고 있다. EDCF 운영 실무를 맡고 있는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12월 이 지역에 5800만 달러를 지원키로 결정했다.
상수도 개발사업 외에도 스리랑카는 EDCF를 통한 다양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적개발 사업이다. 스리랑카는 국내총생산(GDP) 중 70%가 단순 서비스업일 정도로 제대로 된 일거리가 부족하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스리랑카사무소 타타델루 하야시 이코노미스트는 “노동의 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직업교육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우리 중소기업 기술을 활용한 쓰레기 처리사업 등에 대한 관심도 높다.
수출입은행 황선명 스리랑카 소장은 “스리랑카 EDCF 지원을 통해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며 “인프라 사업 지원은 우리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 기회를 제공해 국익에도 유익하다”고 말했다.
골·함반토타=글·사진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