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사업 40년(하)] 한국무기 각국서 선망… 업계는 출혈경쟁·규제로 흔들

입력 2014-03-22 02:49


(하) ‘방산 한류’로 제2의 도약을

“우리나라의 자원을 담보로 해서 선진화 경험을 전수하고 방위산업 물자를 제공해줄 수 있는가.” 한국국방연구원(KIDA) 심경욱 박사는 지난 19일 인천의 한 중견 방산업체 강연에서 “옛 동구권 국가들과 아프리카, 남미, 중동, 아시아 군 고위관계자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한국의 무기들이 우수한 한국군에 대한 인식과 함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불고 있는 ‘한류’에 힘입어 ‘방산한류’가 가능하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최근 방산 수출이 크게 늘어났지만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18%에 불과하다. 제조업부문 설비가동률은 80∼85%에 이르지만 방산부문 설비가동률은 60%에 불과하다. 설비의 절반 정도를 놀리고 있는 셈이다. ‘방산업계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각종 규제와 지나친 경쟁체제, 비리의 온상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방산업계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탄력을 받기 시작한 방산수출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전략수립과 ‘손톱 밑 가시’ 같은 불합리한 관행들을 불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손톱 밑 가시’ 제거해야=산업연구원(KIET)이 지난해 조사한 우리나라 방위산업체의 경쟁력은 선진국 대비 55%, 국가경쟁력은 61%에 그쳤다. 방산업체들은 업체경쟁력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출혈경쟁이 완화되는 등 방산업계의 ‘손톱 밑 가시’가 제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KIDA 최성빈 박사는 방산학회가 지난 20일 개최한 세미나에서 ‘10대 손톱 밑 가시’를 제시했다. 국방연구개발에서 핵심기술에 대한 진흥정책 부재와 추가비용 업체 전가, 원가계산제도의 불합리성, 방산중소기업 육성책 부재가 주요 내용이었다.

국방 연구개발은 기술역량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국내 업체 가운데 공들여 생산한 무기의 해외 판매를 목전에 두고 좌절된 곳이 적지 않다. 핵심기술을 갖지 못해 이 기술을 지닌 미국 등 선진국의 수출 제한에 걸려서다. 기술개발이 시급하지만 개발여력이 있는 방산업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정부가 발주한 연구개발도 예산절감을 위해 단계별로 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연속성이 없어 참여업체의 위험부담이 크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비용도 업체가 부담해야 한다. 기술료 지급문제도 업체로서는 부담이다. 국가기관이 발주한 연구개발에 공동으로 참여해도 기술에 대한 권한은 정부가 갖는다. 이 때문에 업체가 양산을 하거나 수출할 때는 매번 기술료를 내야 한다.

과도한 경쟁제도 시행으로 출혈계약이 심한 것도 개선돼야 한다. 2006년 방위사업청이 개청한 뒤 무기 획득 및 군납제품 선정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대폭 강화됐다. 또 방산이 국가안보를 위해 필수적인 사업이지만 국가가 지원하고 보호·육성한다는 의식은 약해졌다. 방산업체들도 국가가 지원하는 안전한 영역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거친 경쟁을 통해 ‘쓴맛, 추운 맛, 힘든 맛’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계약이 경쟁입찰로 진행된다. 방산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저가 낙찰’에 비중을 둔다는 점이다. 업체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장은 획득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방산기반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배려도 미흡하다. 2010년 중소기업 우선선정 품목지정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함정이나 항공기 등과 같은 완성품 수출도 중요하지만 후속사업으로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부품 등 실제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중소업체들이 생산하고 있다. 방사청이 중소기업의 해외방산전시회 참여 시 비용일부를 부담하는 등 지원방안을 늘리고 있지만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방산수출 컨트롤타워 마련해야=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한 고등훈련기 T-50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훈련기 도입 사업에서 이탈리아 훈련기 M-346에 고배를 마셨다. 성능은 앞섰지만 가격과 부대조건에서 밀렸다. 이탈리아는 각종 산업협력과 국제자동차경주대회경기장 유치 등 물량공세를 폈다. 이 때문에 당시 “신랑은 훌륭한데 혼수 때문에 졌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산업연구원이 방산분야에서 국가 경쟁력을 산정할 때 기준으로 삼은 것은 구매국 정부와의 우호정도, 제품 수출 시 절충교역 등 부가가치 제공 능력, 수출지원시스템, 수출지원에 대한 인식 정도였다. 방산물품의 수출은 제품만 훌륭하다고 해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업체 단독으로는 막강한 자본력과 정부 지원까지 등에 업은 세계 유수의 방산업체들을 상대하기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만큼 버겁다. 이스라엘의 훈련기 도입 사업에서도 T-50이 이탈리아 제품에 밀린 것은 이스라엘과 이탈리아의 특수한 국가 관계가 작용했다는 후문이 돌 정도로 국가 간 관계가 중요하다.

최근 방산제품을 구매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절충교역을 요구한다. 구매액의 일정부분 또는 전체에 해당되는 액수만큼 자기 나라의 제품을 구입하든지 기반시설을 마련해 달라는 조건이다. 이를 충족하려면 방산업체나 방사청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전 정부기관이 관여해야만 가능하다.

말레이시아 잠수함 수출을 놓고 우리나라 업체와 프랑스 업체가 경합을 벌였을 때 프랑스는 항공노선을 개설하는 파격적인 측면지원으로 잠수함 수출건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현재 우리는 방산수출 시 이런 부대조건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전 정부기관이 협의하는 기구가 없다. 방산업체들이 진출할 수 있는 국가군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전략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방산 육성과 수출 증진을 위해 청와대에 방산비서관을 두는 등 방산을 총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심경욱 박사는 21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는 우리군의 선진체계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우리군 교육체계와 국방정책 수립과정 등 소프트웨어와 방산물자를 연계해 수출전략을 수립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방산업체, 자부심 회복 필요=지난 40년간 중견 방위산업체를 꾸려온 한 기업인은 최근 한 모임에서 “고생은 했지만 보람도 적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제는 사업을 접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토로했다. 방산업체가 ‘온갖 비리의 집합체’로 비치고 ‘도둑놈’처럼 인식되는 상황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원가를 부풀리고 함량 미달 제품을 납품하거나 허위자료 작성 등 방산업체의 비리가 적지 않았다. 방산비리는 국가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의 잘못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작은 비리에도 사회적인 비판이 큰 이유이다.

하지만 방산업계도 이제는 달라졌다. 방위산업학회 이원승 부회장은 “일부 업체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전 방산기업들이 매도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대부분은 엄정한 원가관리와 기준에 맞는 소재로 최고 성능을 지닌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내수에만 의지했던 방산업체들도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온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