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땅은 가나안이었나… 탈북자 눈으로 본 한국 교회

입력 2014-03-21 17:55 수정 2014-03-22 02:55

“남조선이 가나안 땅입니까?”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 나오는 북한 지하교회 교인의 대사다. 국민일보는 지난 17∼19일 교회에 출석하는 탈북자 7명에게 한국 교회를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는지 물어봤다. 어떤 이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다고 했고, 다른 이는 ‘가나안’(출 3:17)을 사모할 뿐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교회가 말로만 사랑을 외치는 곳이라고 토로했다.

탈북자는 과거 귀순자로 불렸다. 정부는 1997년 관련법 제정 후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하다 2005년 이후 새터민 사용을 권장했다. 그러나 2008년 통일부는 가급적이면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탈북자들은 “어떤 용어도 형제가 아닌 이방인으로 대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탈북자들은 “차라리 부산 출신, 강원도 사람이라고 하듯 우리도 함경도 출신, 평양 사람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탈북자라고 쓴다.

'홍해교회'에서 가나안 가게 해 달라 기도

10년 전 박요셉(33·나들목교회)씨는 캄보디아 한 교회에서 금식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남한으로 가게 해 주세요.’ 5년 가까이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중국을 떠돌다 간신히 제3국에 입국한 상태였다.

“남한에 가려는 탈북자들의 쉼터 격인 교회가 당시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었어요. 저는 그곳에서 처음 성경을 읽었어요. 우리끼리 그 교회를 ‘홍해교회’라고 불렀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홍해를 건넜잖아요. 교회가 홍해가 돼 우리를 무사히 한국으로 인도해주길 바랐던 거죠.”

그는 2004년 기도대로 한국에 도착했다. 많은 탈북자들이 박씨처럼 중국이나 제3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 등을 통해 복음을 듣는다. 지난해 말 기준 탈북자는 2만6112명. 탈북자 사역단체는 이 중 약 70%가 크리스천이라고 추산한다. 탈북 이후 한국 정착 과정에서 기독교 단체의 선교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2009년 입국한 김영미(가명·41·여)씨는 탈북자 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1박2일 한국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가족 모두 교회를 다니셨어요. 할머니는 권사님이고, 며느리는 집사님이고…. 저를 유명한 평양냉면 집에 데려가셨어요. 제게 고향의 맛을 보게 해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는 이 가정이 출석하던 교회에 나갔다. 김씨는 교회 등의 도움으로 이태 전 아들(8)도 데려왔다.

2010년 탈북한 이민수(41·가명)씨는 “한국에 와서 처음 취직한 회사 사장님이 주말 저녁에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셨어요. 교회 가자고 했어요. 아직 하나님을 완전히 영접한 건 아니지만 혼자 지내기 외로우니까 교회에 계속 나가고 있어요. 참 고맙지요.”

이들은 길에서 만난 크리스천으로부터 사랑을 느끼고 복음을 들었다.

돈이 '독(毒)', 말이 화살

교회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교회에서 무분별하게 나눠주는 돈, 누군가 무심코 뱉는 말에….

탈북자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민희숙(가명·53·여)씨. 94년 입국한 민씨는 탈북자 단체를 구성해 국내 여러 교회 집회에 참여했다. “교회에서 탈북자를 50명, 100명씩 데려오라고 해요. 1인당 참가비 명목으로 3만, 4만원씩 주더라고요. 탈북자를 교인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머릿수 채우는 부대쯤으로 보는 거죠. 탈북자끼리는 누가 돈 받고 안 받느냐로 싸움이 나고요.”

이씨는 일부 교회에서 지급하는 출석 사례비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믿음이 없는데도 돈을 받기 위해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게 신앙이 생길 수 없다. 또 탈북자를 나태하게 만든다”고 했다. 박씨는 비슷한 취지로 교회가 청년들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출석부를 만들고 한 달에 2차례 이상 교회에 안 나오면 장학금을 딱 끊어요. 신앙이 출석부로 체크되는 게 아니잖아요. 또 어떤 곳은 청소년에게 대안학교 안 가고 교회에서 성경공부 하면 월 50만원씩 준다고 해요. 이건 장학금이 아니라 ‘독’이에요.”

가르치려 들거나 얕잡아 보는 태도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민씨는 “어디 가서 식탁에 쇠고기나 회가 나오잖아요. 북한에서 먹어봤냐고 누군가 꼭 물어요. 탈북자들 자존심이 강해요. 남한 사람들이야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 벌기 위해 굽실거리기도 하겠지만 탈북자들은 일 하나, 안 하나 똑같이 배급받는 사회에서 살았어요.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강요하는 태도를 참 싫어해요.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 교회 발 끊는 사람 많아요. 10년 넘게 같은 교회 다니는데 계속 다닌 사람은 3∼4명뿐이에요.”라고 말했다.

민씨는 탈북자들이 다른 사회에서 살았다는 것을 인정해 주길 바랐다.

아둘람과 기드온 돼 달라

탈북자들은 한국 교회가 북한을 떠나온 이들에게 다윗의 피신처였던 아둘람(삼상 22:1∼2)이 되고, 통일에 대비해 크리스천 인재를 양성하는 기드온(삿 7)이 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2007년 탈북한 정시주(가명·49)씨는 “교회는 공동체가 아니라 회사처럼 운영되는 것 같다”며 “교인들이 입으로만 하나님을 말하고, 탐욕스러운 삶을 사는 것을 보면 실망스럽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탈북자들은 같은 동포다. 형제를 대하듯 사랑으로 대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권위적인 교회 구조를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뮤지컬 ‘평양 마리아’를 준비 중인 정성산 감독은 “목사님들의 세속적인 모습에 한때 개종을 결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탈북자 출신 김충성 선교사는 “사역자들이 담임 목사 만나는 게 김정일 만나기보다 어렵다는 우스개를 나누기도 한다”고 했다.

정씨는 “한국 교회는 통일을 위해 ‘십자가가 있는 교회’로 거듭나야 하고 북한 선교에 대비해 선교사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북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계속 전하는 게 통일 준비라고 본다”고 조언했다.

탈북자들의 마음에는 고마움 섭섭함 미안함이 뒤섞여 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을 때. 김씨는 한 어르신이 “북한은 포탄을 터뜨리는데 거지같은 탈북자들은 왜 계속 받는 거냐”고 핏대 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제가 그 땅에서 태어난 게 너무 죄스럽더라고요”라고 했다. 이어 “처음엔 남한 교회에서 받은 큰 사랑을 갚지 못하는 게 참 미안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이다. 교회에서 믿음 생활 잘하고 바르게 살면 그걸로 보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봐요.”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아들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매일 건물 외벽에서 걸레질을 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