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영혼 건강을 위한 처방

입력 2014-03-22 02:54

한 수도사가 스승에게 상담했다. “악한 생각이 저를 죽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스승은 “어머니가 이이에게서 젖을 떼고자 할 때 자기 가슴에 쓴 것을 바른다. 그러면 아이가 여느 때처럼 와서 젖을 빨아보다가 그 쓴맛 때문에 달아나 버린다. 자네도 쓴 것을 사용하게나”하고 조언했다. “쓴 것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제자에게 스승은 “그것은 죽음과 다가올 심판에 대한 기억이라네.”

죽음과 심판에 대한 기억

사막 수도사들이 영혼의 건강을 위해 매일 복용할 약으로 권한 것은 죽음과 심판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것을 최초로 가르친 것은 수도사들의 아버지인 안토니였다. 그는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매일 죽는 사람으로 산다면 죄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날 때 저녁까지 살아 있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합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잠자리에 들 때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그렇게 생각하고 매일 산다면 용서하는 삶, 탐욕과 유혹, 그리고 모든 덧없는 것에서 발길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안토니는 죽음에 덧붙여 그다음에 올 심판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꺼져가는 영혼을 되살릴 방안이라고 가르쳤다. 그의 후계자 암모나스도 한 제자에게 “나는 참으로 불쌍한 존재다. 내가 어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인가.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원로 엘리아스도 “나에게는 두려운 것이 세 가지 있다. 내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순간,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순간,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판결을 내리시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사막에서 유명했던 시소에스를 방문한 세 수도사들의 다음 일화도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처방이다. 그를 만난 첫 번째 원로가 “어떻게 해야 불의 강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시소에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째 원로가 “어떻게 해야 죽지 않은 불구덩이에서 구원을 받고 이를 갈지 않게 될까요”라고 물었다. 세 번째 원로는 “바깥 어두움에 대한 생각이 저를 괴롭히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시소에스는 “나는 그런 일들은 전혀 기억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긍휼하신 분이며, 나는 그분이 나에게 자비를 나타내실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상 밖의 대답을 들은 세 수도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에 시소에스는 다음과 같이 위로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복된 사람입니다. 정말로 당신들이 부럽습니다. 당신들은 불의 강과 지옥, 그리고 어두움에 대해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들의 영혼이 그러한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면 당신들은 범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마음이 완악하며 사람들을 위한 형벌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항상 죄를 짓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시소에스의 말에 탄복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야

사막 교부들은 우리와 달리 구원의 확신만 가진 채 제멋대로 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심판을 당할까봐 늘 두려워했다. 황제의 스승으로 원로원 의원 출신의 수도사 아르세니우스가 임종 시에 했던 다음 말은 평소에 수도사들이 가진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한다.

아르세니우스가 우는 것을 제자들이 보고 물었다. “아버지여, 당신도 두려우십니까”라고 하자 그는 “지금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내가 수도사가 된 이후로 항상 느껴온 두려움”이라고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는 세상을 포기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가. 기록에 따르면 아르세니우스는 저녁에 지는 해를 향해 두 손을 펴고 기도를 시작하면 다음날 아침 해가 그의 얼굴을 비출 때까지 한자리에 머물러 기도했던 사람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수도사가 훌륭한 투사가 되려면 하루에 한 시간 잠을 자면 족하다고 자주 말했다. 그렇게 영웅적인 삶을 살았던 금욕 투사의 마음에는 항상 두려움이 자리했다.

우리는 구원 문제에서 평안과 확신만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죽음과 심판은 잊은 지 오래됐다. 구원 받았다고 맘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성경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경고한다.

겁 많은 사막 수도사들이 잘못되었는가, 아니면 겁 없는 우리가 잘못되었는가. 해답은 성경에 있다. 건강한 두려움과 떨림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필히 가져야 할 마음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성경에는 구원을 확신하라는 명령은 없다. 단어조차 없다. 우리에게 필요했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것이다. 말씀 안 하신 것을 놔두고 말씀하신 것이나 갖자.

김진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