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임우현] “하나님 세상의 징검다리로 거듭났습니다”
입력 2014-03-22 02:54
징검다리선교회 대표 임우현 목사
그는 ‘번개탄 목사’로 불린다. 징검다리선교회 대표 임우현(42) 목사는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붙이는 번개탄처럼 예배에 불을 붙인다. 가는 곳마다 예배의 회복과 영적 부흥을 부르짖는다. “이 땅에 복음과 새로운 영적 부흥을 이끌어갈 주인공은 청소년입니다. 청소년이나 부모의 식어가는 마음에 예배를 통해 불씨를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그는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스케줄 노트에 집회 날짜가 깨알같이 적혀 있다. 어떤 날은 서너 차례의 강연을 한다. 지난 1년 동안 700번 이상의 집회를 인도했다. 현재 기독대안학교 하늘스쿨 교장, 대전 침신대 강사, CTS 조이 ‘영빨타임’ 진행자 등으로 섬기고 있다. 청소년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비전의 메신저로 살아가는 임 목사를 경기도 광주시 목동길 하늘스쿨에서 최근 만났다.
여름수련회에서 일어난 역사
복음과 거리가 먼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외할머니는 무속인, 외할아버지는 승려였다. 기독교 고등학교에 들어가 처음 복음을 접했지만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았다. 1년 선배가 대학생선교회(CCC) 고등부 신입생 환영회에 나오라고 통사정을 했다. 선배가 불쌍해 진짜 한번만 가기로 하고 갔다. 토요일 오후, 놀러갔던 그 자리에서 한 누나를 만났다. 대학생 순장인데 정말 예뻤다.
“율동을 네 번 반복하면서 누나의 손을 16번 이상 잡았어요. 남중과 남고를 다니며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에서 살다가 처음 나간 남녀 모임이었어요. 누님이 말씀하시면 어디든 가리라, 누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라. 그랬는데 누님은 저를 주님께 인도하고 바로 어디로 가버렸어요. 하하.”
1988년 8월, CCC 전국청소년여름수련회에 참석했다. 태어나서 처음 간 여름수련회였다. 그는 누님을 쫓아갔던 수련회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이때 그에게 일어난 역사가 청소년 사역에 목숨을 걸게 한 계기가 됐다. ‘아, 나는 이 길을 가야겠구나. 청소년 사역을 하며 예수를 위한 길을 가야겠구나.’ 다음세대를 키우는 꿈을 갖게 됐다. 그는 7, 8월에만 130회 정도의 집회를 인도한다. “수련회에 놀러온 아이들도 혼내지 않아요. 그들도 기다려주면 강력한 집회에서 변화됩니다. 부모가 안 믿더라도, 어떠한 계기로 왔어도 아이가 변하는 시간이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인기 많은 사역자, 영적으로는 바닥
청소년 사역을 하기 위해 4남매의 막내인 그가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갔다. 부모님이 무학이어서 공부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91년 대전침신대에 입학했다. 어머니가 첫 등록금을 마련해주었다. 이후 고학으로 복학과 휴학을 반복하며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시절, CCC 간사가 꿈이었어요. 그러나 CCC 목표가 캠퍼스 복음화인데 신학대는 이미 복음화가 다 됐기 때문에 학교에 CCC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음세대를 세우는 ‘징검다리선교회’를 만들게 됐지요. 95년 5월 1일 제대했고 5월 30일 선교회를 만들었어요.”
이후 그는 13년 동안 수없이 많은 캠프와 공연, 방송, 세미나 사역들을 통해 하나님 문화를 이 땅에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방송 진행, 대학 강의, 집회도 계속 했다. 그러나 승승가도를 달리던 그의 열정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그의 캠프는 화려한 콘서트로 유명했지만 적자가 쌓여갔다. 제자들의 카드로 돌려 막고 사채까지 썼다. 캠프를 해야 돈이 생기고, 그 일을 하려면 인기가 있어야 하므로 방송 진행은 계속 했다.
대외적인 직함으로는 성공한 사역자, 선교회 대표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아무리 해도 계속 적자가 나 결국 부도를 냈다. 3억8000만원의 빚을 지고 가정은 아내와 갈등에 빠져 있고 영적으로는 바닥이었다.
“13년 동안 하나님을 위해 했지만 결국은 제가 하고 싶은 일에 하나님이 필요했던 거예요.”
하루에 세 번, 1년에 1000번 드리는 예배
2008년, 오갈 데 없던 그는 집회 때 한두 번 다녀간 하늘문교회 정옥용 목사를 찾아갔다. 정 목사는 대뜸 “너는 지금 눈이 동태야. 너는 죽어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예배를 드리자고 했다. “네가 사회 보는 예배, 일하는 예배, 네가 만든 예배 말고 네가 무릎 꿇고 회개하고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라는 말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어요.”
그는 곧바로 열흘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사무실을 정리했다. 이제부터 예배만 드리겠다고 제자들과 아내, 아이에게 선포했다. 빚은 분납으로 갚겠다고 말하고 파산 신청했다. 그리고 하늘문교회 사택으로 들어갔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만 하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했어요. 파산은 했지만 내 영은 예배로 살아났어요.”
영적 스승인 정 목사는 3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예배만 드리라고 했다. 자리도 맨 앞에 앉으라고 했다. 매일 오전 9시, 낮 1시, 밤 12시 세 번, 1년에 1000번 예배드린다. 돈도 모으지 말라고 강조했다. 하늘문교회를 개척한 정 목사는 헌금 시간도 두지 않고 십일조 설교도 안 한다. 성전 건축도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하실 것이기 때문에 예배드리며 기다리라고 했다. 교회와 기도원을 건축했지만 빚이 하나도 없다.
3년 동안 예배만 드리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청소년 집회 강의가 펑크났다며 대타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대타로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은혜 받으니 대타 전문 강사가 됐다. 3년 하고 나니 이제는 메인 강사가 됐다. 정 목사는 그즈음 그에게 복음의 징검다리가 되라고 권면했다.
하늘스쿨, 복음의 일꾼 키우다
2010년 형님의 딸, 은혜 받은 교회 제자, 수련회 왔던 아이 중 한두 명 등 열댓 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정 목사가 다음세대를 위해 대안학교를 하자고 했다. 하늘스쿨이 설립되고 임 목사가 교장이 됐다. 학교에선 휴대전화 컴퓨터 텔레비전이 모두 금지된다. 예배도 하루 세 번 드린다. 1년에 1000번 예배를 드리면서 아이들이 변하고 부모도 변했다. “이 땅에서 성공한 사람, 이 땅에서 인정하는 사람을 키우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예배가 사라져가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작아져가는 세태 속에서 모든 일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드리는 복음의 일꾼들을 키우는 곳이 하늘스쿨입니다.”
현재 26명의 재학생 중 형편이 어려운 24명이 장학생이다. 11명의 졸업생은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입학 조건은 3일 살아보고 입학하는 것이다. 또 체벌 동의 각서를 부모와 아이에게서 받는다. 체벌 이유는 어른에게 반말하거나 욕하기, 예배 지각, 성경·노트를 가져오지 않았을 때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다 자요. 교육은 자는 애를 깨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임 목사가 집회에서나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더 나빠지지 말라”다. 나중에 가서 안 나빠진 아이가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빨(성령 충만)’ 충전은 예배에서
한때 서울 쌍문동 지하에 하늘향기교회도 개척했다. 그는 성도 양육보다 특수목회를 선택했다. 부흥집회를 인도하는 메신저 사역으로 방향을 정했다. “주일 낮 예배만 드리고 부흥집회를 인도하러 다니니까 성도들의 영성도, 저의 영성도 약해지는 것 같았어요. 결국 2년 만에 교회 사역을 접었어요. 목회는 한국교회를 다니며 부흥집회를 인도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지요.”
그는 지금까지 14권의 책을 출간, 인세만도 웬만한 회사원 월급보다 많다. 강사료도 상당 액수다. 그러나 그의 통장은 매달 0원이다. 아내가 십의 팔조를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아무리 많이 벌어도 그보다 더 많은 빚을 졌으나 지금은 십의 팔조를 드리고도 부족하지 않다. 3억8000만원의 빚도 2년 전 다 갚았다. 하늘문교회의 조립식 사택이 그의 집이다. 경차를 타고 한 달에 1만㎞를 달리니 성도들이 렌터카를 해 줬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예수를 제일 잘 믿고 있다. 예전에는 예수를 믿어도 힘들고 불안하고 걱정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 집회, 방송, 대학 강의, CTS
‘영빨타임’ 진행 등 지금도 하는 일은 많다.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예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는데 지금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만 한다는 겁니다.”
광주=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