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한밤 강남 한복판서… 2명 사망 1명 뇌사
한밤중 서울 도심에서 시내버스가 광란의 질주를 했다. 연쇄 사고를 일으키며 차량 8대를 부수고 약 1.2㎞를 달린 버스는 교차로에 서 있던 다른 버스를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사고를 일으킨 버스기사 염모(59)씨를 포함해 2명이 숨지고 1명은 뇌사에 빠졌다. 16명이 부상했다.
사고 원인은 온통 미스터리다. 버스는 정상 노선을 벗어나 내달렸고 기사는 승객들의 “멈추라”는 외침에도 차를 세우지 않았다. 버스의 블랙박스는 사고 충격에 파괴됐으며 GPS(위성항법장치) 운행기록장치도 사고 1분 전 왠지 꺼져버렸다. 경찰은 일단 염씨의 건강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시내버스의 폭주=19일 밤 11시43분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사거리에서 송파상운 3318번 시내버스가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택시 앞에 있던 다른 택시 2대까지 연쇄추돌이 일어났다. 승객 3명이 기사 염씨에게 “아저씨 멈추세요”라고 소리쳤지만 염씨는 “어, 어” 하며 옆 차로로 옮겨 계속 주행했다.
버스는 신호를 위반해가며 1.2㎞가량 달려 11시46분쯤 송파구청사거리에서 5차로에 서 있던 택시 3대와 벤츠·SM5 승용차의 좌측면을 차례로 들이받았다. 이어 4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30-1번 버스를 뒤에서 강하게 들이받고서야 섰다. 불과 3분 만에 벌어진 상황이다.
염씨와 30-1번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대학 신입생 이모(19)군이 사망하고 같은 과 장모(18)양이 뇌사에 빠졌다. 16명은 경상을 입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3318번 버스의 차체와 파손된 블랙박스 복구를 요청하고 염씨의 시신도 부검키로 했다. 피해 차량 블랙박스 4개를 분석한 결과 염씨가 과속을 하지는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도대체 왜…숱한 의문점=3318번 버스는 강동공영차고지와 마천동을 오간다. 염씨는 1차 사고 전까지 노선을 따라 주행했으나 추돌 후 600여m 직진한 뒤 잠실역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300m 더 가서 다음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정상 노선을 이탈한 것이다. 경찰은 “사고 지점에 스키드 마크(급정거 시 노면에 생기는 타이어 자국)가 없다”고 말했다.
버스에 장착된 운행기록용 GPS는 사고 발생 1분 전에 꺼졌다. 송파상운 관계자는 “1차 사고 전인 오금동과 석촌호수 사이 지점부터 버스 운행기록이 끊겨 있다”고 밝혔다. 차량에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송파상운 측은 “GPS를 꺼놓으면 서울시로부터 회사가 불이익을 받는다. 운전자가 끈 게 아니라면 꺼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사고 버스는 현대자동차가 만든 2억원짜리 저상버스다. 운행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는 새 차여서 기계결함 가능성은 낮다고 회사 측은 주장했다. 이틀 전 서울시의 제동장치와 엔진, 배기가스 검사를 받아 모두 통과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염씨가 운전 도중 신변에 급작스러운 이상이 왔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운전자가 사고를 막기 위해 핸들을 도로변으로 꺾는다든지 하는 최소한의 예방운전도 하지 않았다”며 “뇌졸중이나 심장마비의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염씨가 지난 16일 마라톤대회에 나가 완주했을 만큼 건강했고 평소에도 전혀 아픈 곳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염씨의 여동생 A씨(56)는 “시신의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고 무릎에 큰 상처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브레이크를 잡으려고 노력한 흔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