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끝장 토론] 전문가들 우려 반 기대 반 “개혁 의지는 좋으나 내용·방법에 문제 많다”
입력 2014-03-21 03:20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규제개혁 ‘끝장토론’ 내용에 대해 전문가들은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지만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공무원의 의식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특히 ‘규제가 악’이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으로는 순기능적인 규제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았다.
전문가들 대부분은 일단 현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 자체에 대해서는 후한 평을 내리고 있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정부가 규제개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신설규제 도입 시 비슷한 비용의 규제를 폐지하는 ‘규제비용총량제’ 도입은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고민해 볼 만한 방안”이라고 동조했다.
하지만 내용이나 방법론상으로 들어가 보면 비판적 시각이 월등히 많다. 우선 지나치게 규제를 양적인 측면에서 축소해야 한다는 정부의 사고방식이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상조 교수는 “규제개혁이라는 것이 강제규정을 완화하면 상법 개정 등 다른 부분의 수단을 동원하는 등 유기적으로 대체해야 하지만 총량만 줄이는 데 집중할 경우 규제 사각지대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신석훈 연구위원은 “규제라는 것이 경제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총량으로 묶어두고 기계적으로 완화하는 방법이 옳은지 확신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홍범 교수는 공무원의 속성을 거론하며 규제개혁의 지속성에 회의적이었다. “역대정부에서 보듯 보이는 규제의 양에만 관심이 쏠리면 공무원에 의해 은밀한 그림자 규제가 늘어나곤 했다”는 것이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도 “더 큰 문제는 공무원들이 규제를 자신의 권한으로 인식하는 부분”이라며 “공무원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규제완화=일자리 창출’이라며 마치 규제를 경제활동에 있어서 악의 근원으로 단정하는 듯한 발상이 문제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카드사들이 고객 정보를 통해 각종 사업을 벌이고 일자리를 늘리곤 했지만 규제 완화의 부작용은 전대미문의 정보유출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강정민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규제완화 차원에서만 접근한 외국인투자촉진법은 공정거래법상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했으며 금산분리의 완화는 지난해 동양사태처럼 그룹 재무위험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규제개혁 주체가 대통령 의중에 충실하거나 재계 이익을 대변할 사람들로 구성될 경우 규제개악이 될 수 있다(김상조 교수)는 시각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합리적이고 지속적인 규제완화를 위해서 시민단체 등의 규제개혁정책 참여를 주요 대안으로 제시했다. 박상인 교수는 “규제의 장단점을 평가할 만한 기준을 정부에서 명확히 제시하고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제3 집단이 규제개혁 공론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정근 아시아경제학회장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금융, 교육 등 분야별로 건건이 규제를 점검해서 공무원들이 그 필요성을 수용하지 못하면 없애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세욱 조민영 이경원 박은애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