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끝장 토론] 중기·자영업자들의 ‘손톱 밑 가시’ 고충과 답변들

입력 2014-03-21 03:16 수정 2014-03-21 10:50


“평창올림픽 스키장도 규제로 신음… 한꺼번에 풀어야”

중소기업·벤처기업·자영업자 대표 등은 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몸소 느꼈던 ‘손톱 밑 진짜 가시’를 토로했다. 발언자들은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방송으로 생중계까지 되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일선 현장에서 규제 때문에 느낀 고충을 조목조목 털어놨다.

“관광호텔 지으려는데 파렴치한이 되더라”

한승투자개발 이지춘 이사는 “초등학교에서 180m 떨어진 곳에 관광호텔 건립을 검토하고 있는데 규제와 싸움을 하고 있다”며 “관광숙박산업을 유해하다고 규정하는 법이 문제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저희는 학교 주변에 유해시설을 건립하는 파렴치한 사업자가 되는 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는 건강한 사람”이라며 제도 변경을 건의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우리 사회가 너무 근엄하고 학습중심적이다보니까 문체부 입장에서도 힘들다. 저도 노력하고 다른 부처에서도 노력할 수 있도록 대통령께서 확확 압력을 넣어주셨으면 한다”며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시대에 안 맞는 편견으로 인해 청년들이 많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막는 것은 거의 죄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자꾸 안 된다고 하지 말고 과연 이런 법이 지금 시대에 맞는지 자꾸 이슈화를 시켜라”면서 “그래서 어떻게든 풀어야지 그냥 할 수 없다고 하면 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튜닝 규제 완화해 달라”

장형성 한국자동차튜닝협회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튜닝 시장이 미국이나 일본 또는 독일에 비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관련 규제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라면서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여가활동용 튜닝, 시민생활형 튜닝 등과 관련해 더 많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푸드트럭 제조 업체 두리원FnF의 배영기 대표는 “푸드트럭 사업은 젊은층의 아이디어와 소규모 자본만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사업인 만큼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관련 법규 개정을 요청했다. 배 대표는 “현재 일반 화물차를 푸드트럭으로 개조하는 것은 세법과 안전상의 이유로 불법이다. 이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동차 튜닝에 대해 “타인의 안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부분은 안전 기준 전제하에서 규정을 바꾸겠다”며 “예를 들어 전조등은 타인 안전과 직접 연결돼 승인해야 되는 부분으로 놔두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튜닝할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푸드트럭 문제에 대해선 정승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구조 개선이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자동차등록증만 첨부하면 그 업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장비인증 절차가 중복돼 비용지출이 너무 많다”

냉동공조장비를 생산하는 현대기술산업의 이지철 대표는 불필요한 장비인증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1600여개 인증기관에서 185개의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같은 환경에서 인증을 받으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며 “유사한 인증이 많아 수많은 애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인증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인증의 숫자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 행정규제기본법을 개정해 일몰제를 적극 시행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런 것이 실시간으로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고쳐지는지 기업하는 분들이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국민이 더 체감할 수 있는 정부의 대응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에서 규정을 고치고 있다고 할 때 정부 3.0을 통해서도 기업이나 국민이 알고 싶은 정보를 우선 제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게임산업은 점점 생명력 잃고 외국산 게임에 잠식”

온라인게임 개발사 네오플의 강신철 대표는 “규제일변도 정책으로 우리 게임산업이 점점 생명력을 잃어 국내 시장은 절반 이상이 외국산 게임에 잠식당했다”면서 특히 ‘셧다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강 대표는 “2009년 3만개가 넘었던 게임업체 수가 4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며 “셧다운제 등 관련 규제를 주무부처 한 곳하고만 얘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셧다운제가 변화하는 환경에 부합하는 규제인가라는 비판을 받아들여 게임산업이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도 추구하고 선한 산업이 될 수 있도록 협조하고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때 유 장관이 조 장관에게 “규제를 폐지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나. 감사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감사원도 민간의 진단 받아야”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서동록 파트너는 “정부 부처가 규제를 완화하려면 감사원이 보배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면서 감사원도 민간의 진단을 받을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영국은 각 부처의 핵심 사업에 대해 그 성과가 해마다 얼마나 개선됐는지 감사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도 잘못된 것만 지적하면 일을 안 한다”며 “가만히 있어도 감사를 받는다고 한다면 긍정적으로 압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공무원들의 선례를 답습하는 행태나 민원 등을 빙자한 소극적 업무행태를 비리에 준해 엄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감사원에서 노력을 많이 했는데 팍팍 체감이 안 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의 분발을 주문하면서 박 대통령은 “각 부처가 브랜드 과제를 선택해 연말에 성과를 평가하는 모임을 갖자. 만들어온 음식이 초라하고 맛없으면 실패한 것이고 맛있으면 성공한 것”이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황사 같은 의원입법, 일일청소 필요”

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은 “오늘 회의는 규제를 대청소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청소는 매일매일 또 해야 한다. 새로운 먼지인 신설 규제들이 대체로 국회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의원입법을 황사에 비유, “국회의원들의 입법을 심사하는 체계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아울러 김 원장은 “공무원들도 규제 확대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큰 사고가 났을 때는 흥분된 상태에서 규제가 신설되는 경향도 있다”며 “국민생활을 어렵게 하고,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나쁜 규제를 감시하는 시스템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덩어리 규제, 갈라파고스 규제로 신음하고 있다”

앞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발제자로 나서서 “규제를 풀 때는 하나하나가 아니라 한꺼번에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심지어 개최를 4년 앞둔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장 건설도 덩어리 규제로 신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또 “서울올림픽 때 해외 여행객 1인당 면세 한도가 400달러였는데 26년 동안 제자리”라면서 “시대가 바뀌면 규제도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택 분양가 상한제에 대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폐지를 권고했는데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며 “외국에서 보면 황당한 ‘갈라파고스 규제’들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