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끝장 토론] 朴 대통령·참석자 송곳 질의에 장관·공무원들 ‘쩔쩔’
입력 2014-03-21 03:20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큰 문제다. 관계부처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20일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가 열린 청와대 영빈관. 박근혜 대통령의 날카로운 질책에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의 얼굴은 일순간 일그러졌다. 한 중소기업인의 규제 폐해에 대한 호소에 송 부회장이 “여러 방면으로 검토 중”이라고 답하자 곧바로 나온 질의였다. 규제개혁 민관합동추진단 공동단장을 맡은 송 부회장은 고개를 숙였고, 말이 없었다. 회의 사회를 맡은 홍익대 김종석 교수가 재치 있게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회의장 전체가 얼어붙을 뻔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민간 참석자 질문에 답변하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부드럽지만 뼈 있는’ 질문을 받았다. 온화한 얼굴에 차분한 녹색 재킷을 착용한 박 대통령은 모든 참석자들의 말에 귀를 떼지 못했다. 손에는 연필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고, 중요하다 싶은 발언은 여느 때처럼 메모를 했다.
민간 부문 참석자들의 하소연을 듣는 공무원들 표정에는 공감과 함께 곤혹스러움도 묻어 있었다. 부처 장관들은 규제 관련 해당 민원을 듣느라 한 치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고, 발언 내용을 꼼꼼하게 적거나 대답을 준비하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규제개혁 민관합동추진단 소속 한 공무원은 박 대통령이 “그분이 참석하기로 돼 있었는데 어디 계신가요”라며 즉흥 질문을 던지자 뒤늦게 “여기 있습니다”라고 손을 들기도 했다. 그의 첫마디는 “예정에 없는 물음에 굉장히 당황했다”는 것이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관광호텔 신축을 추진 중인 한 업체 대표의 말에 “저도 미치겠습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유 장관이 “전혀 예측 불가능한 기준을 가지고 규제를 하는데, 다른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그러지 않도록 대통령께서 확확 압력을 넣어주십시오”라고 하자 회의장 전체에 한바탕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시종일관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규제의 벽을 깨야 한다는 신념을 피력할 때는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국무조정실의 규제개혁 대책 보고와 민간 부문 발언자들의 사전 질문 자료를 숙지한 상태에서 회의에 참석한 듯 모든 문제제기에 막힘이 없었다.
그러나 참석자들 중에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 얼굴을 보인 경우도 있었다. 오는 25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졸음이 오는 듯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생중계 TV 카메라에 포착됐다.
한편 자국의 규제개혁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참석한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는 느린 한국어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초대해줘서 감사하다”고 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에 인사했다.
160여명이 참석해 42명이 발언기회를 가진 이날 회의는 오후 2시에 시작, 무려 7시간을 넘겨 오후 9시5분쯤 끝이 났다. 사회자가 회의 중간에 “잠시 쉬었다 다시 할까요”라고 하자, 박 대통령은 “그냥 계속 진행하시죠”라며 마지막까지 ‘끝장토론’을 독려했다. 박 대통령은 참석자들이 저녁도 먹지 않은 상태임을 감안한 듯 “제 마음 같아선 좋은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데 죄송하다. 경우가 아닌 것 같은데”라는 말로 회의를 맺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