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62%가 ‘의·정 협의 찬성’… 집단휴진 피했지만 국민 볼모로 ‘주고받기’ 비판
입력 2014-03-21 03:29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와의 협상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24일로 예정됐던 집단휴진 사태는 일단 피했다. 파국은 막았지만 적당히 주고받은 합의문은 거센 후폭풍을 낳고 있다. 정부는 국민을 배제한 채 중요한 의료 정책을 의사협회와만 협의해 결정했다는 반발에, 의사협회는 환자를 볼모로 그동안의 민원을 한방에 해결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게다가 의사협회는 집단휴진 ‘철회’ 대신 ‘유보’라는 단어로 여지를 남겨뒀다. 언제든 집단행동의 불씨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집단휴진 ‘유보’의 의미=노환규 의협 회장은 20일 서울 이촌로 의협회관에서 “투표 결과 62.16%(4만1226명)가 ‘의·정협의 찬성’에 표를 던졌다”며 “24∼29일로 예고했던 집단휴진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투표는 지난 17일부터 이날 낮 12시까지 진행됐다.
의사협회는 이런 결과를 받아들고도 발표 직전까지 집단휴진 카드로 정부를 압박했다. 생방송 카메라를 앞에 두고 노 회장은 갑자기 발표를 10여분간 미뤘다. 그 사이 의정협의 주요 내용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조 개편을 둘러싼 논란에 정부 측 해명을 요구했다. 확실히 정리되지 않으면 ‘집단휴진 유보’를 발표하지 않겠다는 협박이었다.
정부는 건정심 공익위원 구성 중 정부 관계자 몫 4명을 제외한 나머지 전문가 공익위원의 추천권을 가입자와 공급자(의료계)가 절반씩 추천하도록 개편하겠다고 설명해 왔다. 반면 의사협회는 정부 관계자가 공익위원에서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정부와 엇갈린 해석을 내놓았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건정심 위원 24명 중 의료계 몫은 10명이 되지만 의사협회 해석대로라면 12명이 된다.
노 회장은 보건복지부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은 뒤에야 결과를 발표했다.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이 보낸 휴대전화 문자는 “공익위원 선정 절차 등은 정부와 의료계 등이 협의해 마련키로 했으나 오해 소지를 불러일으켜 유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두고 노 회장은 “정부 측 발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해석이다.
노 회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고 나간다면 또다시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정심 구조 개편은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법 개정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집단휴진 카드를 꺼내겠다는 뜻이다.
◇의료계 달래느라 국민 배제한 정부=건정심은 의료 서비스 가격(수가)과 보험 적용 범위 등 중요한 건강보험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다. 정부는 원격의료와 영리자회사 허용 등에 대한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건정심 구조 개편’이란 선물을 의료계에 선뜻 안겨줬다.
건정심 위원 구성에 의료계 목소리가 커지면 지금보다 수월하게 큰 폭의 수가 인상이 가능해진다. 매년 의료계는 수가를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건정심은 2∼3% 선에서 수가 인상을 억제해 왔다. 수가 1%를 올릴 때마다 건강보험 재정 약 3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건정심 구조 개편으로 수가 인상 폭이 커지면 건강보험료는 인상될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연일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6개 가입자 단체로 구성된 건강보험가입자포럼은 이날 “정부는 국민의 보험료 부담은 고려하지 않고 건정심 구성에 의료계를 확대하는 방안에 합의했다”며 “국민을 배제한 정부와 의협의 합의는 야합”이라고 비판했다.
문수정 황인호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