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금, 자산가 탈세 목적 거래… 양성화 쉽지 않을 듯

입력 2014-03-21 03:34


금 거래소, 역할 제대로 할까

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예탁결제원에 금덩이가 들어왔다. 이날 입고된 1㎏ 골드바는 총 17개였다. 예탁원은 추후 하루 평균 4∼7t의 금이 보관될 것으로 예상한다.

예탁원에 금이 입고된 건 오는 24일 한국거래소가 만드는 ‘KRX금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금을 거래할 곳이 없어 음성적으로만 금 거래가 이뤄지자 이를 양성화하기 위한 시장이다. 거래소는 이곳을 통해 금을 이용한 탈세 등이 사라질 것으로 본다.

◇거래 규모도 안 잡히는 금=현재 우리나라의 정확한 금 판매 통계는 잡히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신고되는 거래가 많지 않은 탓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업계 모두 정확한 판매량을 모른다. 연간 100t이 넘는 수준으로 거래가 이뤄진다고 추정할 뿐이다. 이 중 음성적 거래가 55∼75t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은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특히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쓰인다. 금을 사서 추후에 그대로 자녀에게 넘겨주는 방식이다. 국세청이 현물인 금이 오가는 걸 쉽게 파악할 수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거액의 상속세를 피하는 것이다.

신한은행에서 파는 골드바 1㎏이 부가세 포함해 53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10kg만 자녀에게 넘겨도 쉽게 5억원을 건네는 셈이다. 게다가 지난해 초부터 차명계좌와 불법증여에 대해 대대적 단속에 나서면서 역설적으로 금을 찾는 자산가들은 더욱 늘어나는 실정이다.

오는 7월부터 미국에서 시행되는 ‘해외금융계좌 납세순응법(FATCA)’도 금 인기를 부추긴다. FATCA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국세청이 자국민의 금융계좌 정보를 공유하는 제도다.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자산가들이 미국에 자금을 보관하더라도 그 내역이 모두 공개되자 상대적으로 금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실제 1년 전 KB국민은행은 골드바를 판매하기로 한 이후 한 달 만에 200억원치를 팔았다.

◇금시장 탈세 막을까=거래소와 정부가 가장 큰 기대를 거는 부분도 바로 탈세다. 금 거래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면 탈세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금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은 세계 금 거래 표본인 순도 99.99%의 금이다. 거래소는 시장 조기 안착을 위해 내년 3월까지 1년 동안 거래 수수료도 면제하기로 했다. 수수료가 생기더라도 주식 거래 수수료와 비슷한 수준이 될 전망이다. 완벽한 순금을 수수료까지 깎아주며 거래하게 해 금 거래를 양지로 끌어내겠다는 것.

하지만 금시장에서 대규모 거래가 이뤄지더라도 금 증여 등을 통한 탈세를 완벽하게 잡아내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금시장에서만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시장이 열려도 기존과 같은 금 거래는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거래소는 금시장 내에서 이뤄지는 거래에 대해서만큼은 탈세 걱정을 붙들어 매도 된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공도현 금시장운영팀 팀장은 20일 “거래내역이 100% 전산에 기록되기 때문에 우리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세금 등은 철저히 매겨진다”며 “다만 장외시장에서 소규모 거래로 이뤄지는 탈세와 불공정혐의는 국세청과 검찰에서 잡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금시장 활성화될까=금시장이 제 자리를 잡기 위해선 금 가격 추이도 중요하다. 지난해처럼 금 가격이 추락하면 금시장은 침체될 수밖에 없다. 실제 국제 금시장에서 트로이온스당 가격은 지난해 1월 2일 1693.75달러에서 12월 2일 1229.50달러까지 떨어졌다.

올해 들어 금 가격은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기준 트로이온스당 1338달러까지 올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수준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KDB대우증권 손재현 선임연구원은 “연초에 금 가격이 뛴 건 1월 춘절효과로 인해 중국의 수요가 늘어나고 미국 지표 불안과 우크라이나 문제로 인해 금 선호현상이 빚어진 탓”이라며 “금값 상승을 일으킨 이유가 모두 약해지고 있는 데다 미국 경제지표가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보면 더 이상 오르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금 구매는 g 단위로 가능하지만 인출은 1㎏ 단위로 제한하는 것도 소액투자자를 망설이게 한다. 5000만원어치를 사들여야 한 덩이를 빼낼 수 있기 때문에 거래소의 금을 만지기 쉽지 않은 셈이다. 이에 공 팀장은 “구매와 인출 단위를 같게 하면 골드바를 계속 잘게 쪼개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며 “실제 1㎏ 미만의 금이 필요할 경우에는 거래소 외의 일반 금 판매처에서 사면 되고, 이곳에서는 현금으로 바꾼 이후 빼내면 된다”고 설명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