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軍 쫓겨나듯 크림서 철군
입력 2014-03-21 04:06
러시아가 크림자치공화국을 장악하기 위한 절차에 속도를 내면서 이 지역에 주둔하던 우크라이나군이 쫓겨나듯 기지를 떠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 측 제재에 대한 반격으로 ‘이란 핵 협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안드리 파루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위원장은 19일(현지시간) “크림반도에 있는 우리 군 장병과 가족들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본토로 이동시킬 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제대로 저항도 못한 채 ‘백기’를 들고 크림반도에서 서둘러 빠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안전한 대피를 위해 유엔에 이 일대를 ‘비무장지대’로 선포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크림반도에 배치됐던 우크라이나 군인과 가족 등 2만5000명가량이 본토로 되돌아오게 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서 완전히 항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주요 6개국(P5+1) 및 이란의 핵 협상 실무 전문가회의를 마친 뒤 “우리에겐 이란 핵 문제보다 우크라이나 병합이 더 중요한 문제”라며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제재를 이어간다면 핵 협상 과정에서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란과의 핵 협상 테이블에서 서방 측 입장에 동의해 왔는데 이런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시리아 사태에 있어서도 서방 측은 러시아의 협조 없이는 문제를 풀어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측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회의에 앞서 러시아의 협조를 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AP통신은 “랴브코프 차관의 이번 발언은 그동안 러시아가 취했던 반격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이라며 “이란 핵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크림공화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친러시아 자경단은 이날 세바스토폴에 있는 우크라이나 해군기지를 장악했다. 러시아는 크림 주민들의 연금 인상, 크림과 러시아 남부를 잇는 교량 건설 등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고 있다. 또 러시아 하원은 이날 크림과 세바스토폴 특별시의 러시아 병합 조약을 비준했다. 표결 참여 하원의원 444명 가운데 443명이 찬성했고 1명이 반대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 의회는 크림을 ‘잠정 상실지’로 선언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선언문을 채택했다. 의회는 선언문에서 “고통스럽더라도 크림의 해방을 위한 싸움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