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우리가 잡고 싶은 도둑은
입력 2014-03-21 02:56
벌써 기억에서 희미해졌겠지만, 지난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꽤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던 모양이다. 사회복지와는 무관한 모 사립대 의대 교수는 세 모녀 사건을 다루는 시민단체의 긴급 좌담회에 한참동안이나 앉아 있다가 돌아갔다. “어쩐 일로?” “그냥, 좀 충격을 받아서요.” 나중에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비슷한 느낌, 좀 충격을 받은 기분 같은 걸 공유했는지 모르겠다.
이상한 일이긴 했다. 우리 사회에는 있어야 할 복지제도가 다 있다. 나이 들고, 다치고, 실직하고, 아플 때면 4대 보험(연금 산재 고용 건강)의 도움을 받는다. 기초생활보장제는 가난해져도 살 수 있도록 생계비와 의료비, 교육비, 주거비를 지급한다. 거동이 불편하면 장애인에게는 활동보조인, 노인질환자에게는 요양보호사가 파견된다. 그마저도 어려워지면 저렴한 비용으로 요양시설에 들어갈 수도 있다. 노후 준비를 못한 사람에게는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고, 갑자기 소득이 없어지면 긴급복지지원도 해준다. 일할 의지와 능력만 있다면 자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일자리도 준다.
그런데도 죽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것도 돈이 없어서, 가난해서, 빈곤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서 죽음을 택한다. 제도는 있는데 정작 수혜층이 지나치게 얇아서다. 도와줘야 할 정부는 팔짱 낀 감시자처럼 부정수급자 색출에만 몰두할 뿐 빈곤층을 찾아내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니 거기 제도가 있으면 뭐하나. 정부가 설정한 높은 허들을 넘지 못하는 한 어차피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없는데.
정부는 항변한다. 벤츠 끌며 생계급여를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수백억원대 재산을 아들 명의로 돌려놓고 기초노령연금 받는 노인처럼 자격 없는 수급자들을 샅샅이 찾아내라. 재정 누수가 없도록 부정 수급을 철저히 적발하라. 그게 세금 내는 국민들의 요구 아니었나.
지원 대상 발굴과 부정수급 색출. 둘 중 꼭 하나만 고를 필요는 없다. 하나를 선택했다고 나머지를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실은 모든 정부가 언제나 둘을 함께 수행한다. 그럼에도 둘이 공존 불가능한 목표처럼 보이는 건 현실에서 ‘발굴과 색출’이 교과서처럼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기꾼 대신 진짜 수혜자를 찾아내는 게 발굴과 색출이 아니다.
복지 현장에서 발굴과 색출은 종종 예산의 문제일 뿐이다. 예산이 확대되면 발굴이, 줄어들면 색출이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이런 경우 ‘부정수급자’라는 이름으로 적발되는 이들의 상당수는 악의적인 사기꾼이 아니라 선발의 기준선을 오르내리는 경계지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부정수급 적발이라는 명분 아래 정부가 만들어낸 사각지대다.
한 명의 사기꾼이라도 잡아야 하지 않나. 이런 주장도 무시하긴 어렵다. 제도가 불공평하다고 느끼면 반발은 생긴다. 대신 정부는 현명해져야겠다. 최근 복지 부정수급 특별단속 실적을 봐도 알 수 있듯 수백명의 고급 인력을 동원해 저소득층 대상의 복지제도를 뒤져봐야 아낄 수 있는 돈이란 게 고작 몇 천만원이다. 게다가 그들의 상당수는 어쨌든 가난한 사람들이다. 덜 가난하니 당신은 부정수급자라고 말하는 게 온당한 건지는 모르겠다.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는 곳은 의료 보육 교육 등으로 나날이 확대추세다. 민간 공급자를 중심으로 거대한 시장이 형성돼 있는 분야들이다. 사무장병원을 단속하고, 어린이집 회계를 감시하고, 요양시설을 까다롭게 평가하는 게 큰돈 아끼는 길이다. 우리가 잡고 싶은, 주머니 두둑한 진짜 도둑들도 거기에 있다.
이영미 사회부 차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