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방

입력 2014-03-21 02:56


일단 크다. 그리고 어떤 무게도 감당할 만큼 튼튼하다. 안에 무엇이 담기든 그에 맞게 모양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완전수용체다. 컬러와 모양은 미니멀 자체지만 그 속은 다채롭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넓이를 잴 수 없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마술 백이다. 이 백을 여는 모든 사람은 묵직하게 마음의 진동을 느낀다. 한없이 감사하고 때로는 안쓰럽기도 하고, 아리기도 하다. 한여름에도 가방 안엔 온기가 가득하고 한겨울에도 싱싱함이 수북하다. 하지만 때로는 가방의 묵직함에 짜증을 낼 때도 있다. 그래도 돌아와 가방을 여는 순간, 우리는 또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주말 저녁, 어머니는 집을 나서는 우리에게 이 마술의 가방을 쥐어주신다. 가방 안에 새벽부터 일어나 만들어 놓으신 온갖 음식과 밑반찬, 제철과일이 한가득이다. 아이가 있는 오빠네 가방은 거의 식량 보따리에 가깝다. 한여름에도 땀을 흘리시며 음식을 하는 모습을 보면 한 가지도 남기고 싶지 않지만 그리 쉽지 않다. 일하다가 친구 만나다가, 회식 같은 모임 때문에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시일 지난 음식을 버려야 할 때면 죄책감이 이만저만 아니라서 늘 어머니에게 좀 적게 담아 주십사 부탁한다. 아니 처음엔 부탁이던 것이 그래도 꾹꾹 눌러 담는 모습을 보다 보면 짜증으로 돌변, 사과를 넣네, 저 반찬을 빼네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고 만다.

언젠가 당신은 나와, 이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씁쓸한 전언들이 세상 여기저기서 나를 찔러대던 때였다. 몸과 마음이 잔뜩 가라앉아 보통 때보다 일찍 부모님 댁을 나오려던 찰나, 어머니는 부엌 끝에서 또 무언가를 잔뜩 가방 안에 담고 계셨다. 눈도 안 마주친 채 무거워 들기 싫다며 그냥 가겠다는 나에게 억지로 가방을 들려주셨다.

집으로 와선 가방은 본 체 만 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새벽녘 눈을 뜨니 냉장고 앞에 그 가방이 하룻밤을 혼자서 오도카니 자고 일어나 있었다. 음식들이 혹시 상하지 않았는지 걱정하며 헐레벌떡 가방을 열었다. 사과, 호두과자, 장조림, 그리고 흰 곰국이 담긴 그릇 위로, 매일 조금씩 먹을 수 있게 소금이 돌돌 랩에 싸여 있었다. 그렇게 가방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