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애령 장편 소설 ‘깊은 강’… “한국 현대사 관통 모녀 3대 가족사 파상적으로 풀어내”
입력 2014-03-21 02:20
한 집안의 이야기는 선대에서 후대에게로 전수되기 마련이지만 그걸 소설로 풀어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예컨대 전언이나 구술의 서사가 기술(記述)의 서사로 뽑아져 나오기까지엔 그 이야기의 원형이 작가의 마음에 스스로 틀어박혀 펜을 움직이게 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우애령(69·사진)의 신작 장편 ‘깊은 강’(하늘재출판사)은 “젊어서부터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제야 한 권의 소설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가 성장과정에서 부모나 친척들에게 되풀이해서 듣던 이야기가 근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은 임종이 가까운 어머니가 상담 심리전문가이자 작가인 딸 영주에게 숨겨진 가족사를 고백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해방, 남북분단, 6·25와 4·19, 그리고 5·16을 거쳐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전쟁의 와중에 남편의 전사 통보를 받은 터에 먼저 난 아이 셋을 살리기 위해 신생아를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는 어머니의 고백은 이 소설의 수많은 물줄기 중에서도 가장 시린 대목에 속한다.
“아기를 낳게 되면 장독대 위에 놓고 갈까. 무쇠솥 안에 넣고 갈까. 아기를 살리려다가는 세 아이가 다 죽겠구나. 그 생각만 있었단다”라든가 “우리가 임진강을 건널 때 네가 크게 울기라도 하면 너를 강에 내던져야 우리가 살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단다. 용서해다오”등의 문장이 그것.
영주는 진심으로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어머니의 고백을 들으며, 그리고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사의 강물에 깊숙이 침잠하고 자맥질하면서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연민의 정을 느낌과 동시에 자기 연민의 치유 효과도 거두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어머니’ 사이의 가족관계를 더욱 확대하여 ‘조부모-부모-나’에 이르는 3대의 가족사를 파상적으로 풀어낸다. 그 강물위에 뜬 영주의 딸 혜진의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웅숭깊다. 추상적인 연밥 그림 작업을 하는 미대생인 혜진의 목표는 이런 것이었다.
“연밥의 이미지뿐 아니라 그 뒤로 연꽃, 연꽃잎 그런 이미지가 함께 시처럼 떠올라야 한다고 했어요. (중략) 잘 보면 그 뒤로 그 사람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니까요.”(25쪽)
소설은 무수한 갈래와 등장인물을 품고 있지만 그 축은 팔십이 된 어머니, 오십이 넘은 영주, 이제 스무 살이 된 혜진이로 이어지는 모녀 삼대로 압축된다. 이러한 구조는 적어도 3대를 바라보아야 비로소 한 개인에 대한 이해가 완성된다는 작가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