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귀농·귀촌 생활 감동도 고단한 땀이 낳는다

입력 2014-03-21 02:41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마루야마 겐지/바다출판사

도시와는 또 다른 삶, 아니 더 나은 삶을 찾아 시골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부가 20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가구 숫자는 3만 2424가구에 달했다. 2012년 2만 7008가구에서 1.2배 증가했다. 베이비붐 세대(55∼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 귀농·귀촌인구는 더 늘어날 것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책은 도시에서 누리지 못한 모든 것을 시골에서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시골 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당장 꿈깨!’라고 가차 없이 말하는 책이다.

저자는 1966년 소설 ‘여름의 흐름’으로 일본 최고의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최연소 수상한 저력 있는 작가다. 68년 귀향한 청년의 고독을 그린 작품 ‘정오이다’를 발표한 뒤 나가노현 아즈미노로 이주해 47년째 시골 생활을 하고 있다.

책은 2012년 국내에 소개된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바다출판사)보다 4년 전에 쓴 것이다. 어설픈 힐링 대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혹독한 메시지를 담고 있던 ‘인생∼’은 20∼30대 청년들로부터 조용한 호응을 얻으며 에세이로서는 드물게 1만부 이상 판매됐다.

이번 책에서도 저자는 시골 생활의 적나라한 현실을 들이대며 무엇 하나 봐 주는 것 없이 혹독한 조언들을 쏟아낸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시골 역시 부조리투성이인 현실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생활환경으로는 가혹하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여행자가 아닌 도시에서 이주한 당신은 더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처지에 있지 않다. 좋든 싫든, 때로는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자연의 위협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전사여야 하는 것이다.”(30쪽)

지역 주민들은 외지인에게 배타적이라 지역의 기질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솔직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병원 대합실만큼 좋은 곳이 없다. 병원을 찾은 노인들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또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경계심을 덜 갖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시골에서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적절한 왕래를 기대하기란 참으로 우스운 일”이라며 “시골 생활을 시작할 때 그 지역 주민들과 접촉하는 정도를 미리 정해두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주민들로부터 인정받겠다고 섣불리 접근하는 일은 피하라고 충고한다. “어울리지 않고 미움을 사는 편이 어울리고 나서 미움을 사는 편보다 원망이 훨씬 더 적”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 행여 아침마다 찾아오는 고독과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이웃 노인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가는 그 집 머슴 되기 딱 좋다고 말한다.

실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선거야말로 귀농 생활의 골칫거리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저자의 이런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모임 자리에 나온 도시락이나 술이 표를 얻을 목적으로 제공된 음식물임을 알았을 때 당신은 먹고 마신 만큼 돈을 돌려주겠습니까?” “지지하는 후보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신은 지역 주민들이 지지하는 사람과 동일한 이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낙후된 의료 시설과 허술한 치안을 지적하며 그가 내놓는 조언은 너무나 진지한 나머지 웃음을 참기 힘들다. 하지만 결코 농담처럼 들어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가령, 병원이 너무 멀어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시골 병원의 의료 수준은 매우 낮음을 상기시키면서 “거의 야생동물의 최후 같은 죽음, 말하자면 길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의는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 증가하는 시골 범죄율을 거론하며 “가능한 한 큰 개를 키우고, 1m가 넘는 ‘창’을 손수 만들어 예상치 못한 습격에 대비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창을 만들고 실제로 활용하는 방법을 아주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소개한다.

“나도 도시 생활 접고, 시골로 내려갈까”라는 생각을 가슴 속에 요만큼이라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귀농 생활과 관련해 그가 던지는 사소해보이지만 실질적인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면, 귀농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하지 않을까.

얼핏 보면 귀농 생활 가이드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저자의 메시지는 “지금 당신의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책임지며 살고 있느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진정한 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빛납니다. 진정한 감동은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두 문장이다. 고재운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