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드러나는 증거 위조… 공안 검사들 패닉
입력 2014-03-20 03:06
간첩사건 증거 위조 의혹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국가정보원 본부 직원까지 구속되자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공안검사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번 사안이 공안수사 전체에 대한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유우성(34)씨 수사에 관여한 한 검사는 19일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죽을 맛이다”라고 했다. 대검찰청에서는 ‘이번 일과 관련해 외부에 함부로 얘기하지 마라’는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공안검사들은 증거위조 수사팀에서도 완전히 배제된 채 동료 공안검사들이 수사 대상이 된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공안검사는 “처음에는 사건 실체와 절차적 문제를 분리해서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여겼는데 지금은 그 누구도 이렇게 얘기하기 어렵게 됐다”며 “검사들도 이 문제를 거론하기 꺼린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공안부장은 “이러다가 간첩 수사는 모두 조작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판”이라고 걱정했다.
공안검사들은 다만 ‘제 식구’인 유씨 수사·기소 검사들보다는 애써 국정원 측에 책임을 돌리고 싶어하는 듯했다. 서울의 한 검사는 “국정원이 음지에서 실체적 진실을 위해 정보활동을 하지만, 그것이 기소나 법정 증거로 쓰일 때는 반드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이게 다 정보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고 했다. 다른 검사는 “간첩 수사는 국정원 단계에서 최소 3년 이상 진행되다 보니 인사이동이 잦은 검사가 정확한 내막을 알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증거 조작 의혹과 유씨의 간첩 혐의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인식도 여전했다. 유씨 공소유지를 지휘하고 있는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기존에 냈던 증거들을 다시 정밀하게 보고 있다”며 “유씨가 정말 간첩이냐 하는 부분의 규명 작업은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부장검사 역시 “유씨의 친동생이 ‘오빠는 간첩’이라고 증거보전 심리 때(지난해 3월) 판사 앞에서 진술했는데도 안 받아들여진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증거위조 수사팀도 수사가 진행될수록 딜레마에 빠지는 모양새다. 증거위조 사실을 입증해 갈수록 대공수사의 치부는 더욱 드러나게 되고, 반대로 간첩 혐의자의 무죄 가능성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윤갑근 수사팀장은 이런 상황을 빗대 “쇠뿔 고치려다 소를 죽여서도 안 되고(矯角殺牛·교각살우), 뿔이 곪게 나둬 소가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수사팀은 이날 국정원 대공수사국 이모 팀장(3급)에게 소환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호일 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