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신뢰 추락… “감독체제 전면 개편해야” 여론

입력 2014-03-20 03:26


금융감독원이 이번엔 도덕성 문제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금감원 현직 간부들이 1조8000억원대 대출사기에 연루된 혐의가 드러나면서다. 이로써 금감원은 지난해 동양사태부터 올 초 대형 개인정보 유출사고, 이번에 문제가 된 대출사기 사건 등 잇따른 사고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추궁받은 데 이어 감독기구로서의 도덕성까지 치명타를 입게 됐다.

◇감독 책임자가 범인 ‘망봐준’ 꼴=이번 KT ENS 협력업체들이 벌인 희대의 대출사기 사건에 금융 당국 관계자가 연루됐을 것이라는 추측은 사건 수사 초기부터 흘러나왔다. 매출 채권을 위조하는 방법으로 여러 금융사를 상대로 벌인 1조원이 넘는 희대의 사기극이 금융 당국의 ‘눈감음’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는 점 때문이었다. 실제 19일 경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사기 대출을 벌인 핵심 용의자들은 금감원 현직 간부 김모(50)씨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현재까지 밝혀진 김씨의 역할은 피의자들에게 대출사기 사건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 내용을 미리 알려줘 해외로 달아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김씨는 금감원 내부 감찰에서도 피의자들로부터 수억원에 이르는 금품 등을 받아 챙긴 사실이 드러나 직위 해제된 상태다.

게다가 또다른 금감원 간부인 박모씨도 2차례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금감원은 감독 역할을 망각했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금융 사고를 예방·적발해야 하는 직원이 피의자들에게 조사 내용을 미리 알려줘 범죄 사건을 축소하고, 무마할 여지를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말할 자격이나 있겠나”면서 “다만 이번 사건은 우리 감찰실이 스스로 밝힌 만큼 수사 결과에 따라 엄중조치하고 향후 유사사례에 대해서도 더욱 엄격히 하겠다”고 말했다.

◇금감원 신뢰 추락, “과도한 권력 집중 탓” 비판도=금감원의 도덕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금감원은 2011년에도 10여명의 직원들이 저축은행으로부터 퇴출 무마 등의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일부는 실형까지 선고받았다. 당시 이 사건으로 금감원 직원이 퇴직 후 금융회사 감사로 재취업하는 관행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서 금융사 재취업 금지 규정까지 만들어졌었다. 그런데도 최근 금감원 현직 국장이 시중은행 감사로 내정됐다 거센 비판 여론이 일자 그제야 이를 취소하는 일도 벌어진 바 있다.

도덕성뿐 아니다. 금감원이 책임을 지는 금융권에서 발생하고 있는 잇따른 대형 사고는 금융 당국의 기강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동양사태, 올 초 벌어진 최악의 카드정보 유출사태 등으로 금융 당국은 연이은 감사원 감사를 받는 처지에 놓여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일련의 상황 속에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사퇴 압박까지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당국의 관리감독 기능이 제대로 돌아갈 것이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제재의 권위가 서겠느냐”고 말했다.

금융감독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번 사건은 금융감독 당국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비위 사건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모든 규제, 감독 기능과 권한을 금융 당국이 쥐고 있는 현 체제가 비리와 무능의 원인인 만큼 근본적인 체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