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 회담 의제 ‘북핵’ 국한… 한·일 양자회담 탐색전 성격도

입력 2014-03-20 04:04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 추진 배경·전망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24∼25일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의 3국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의제는 북핵 문제 등 안보 이슈에 국한될 전망이다. 한·일 간 불편한 과거사 현안 대신 이른바 ‘원 포인트’성 안보 의제를 집중 논의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3국 정상회담은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양자 정상회담의 전초전 또는 탐색전 성격도 있어 향후 한·일 관계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적극 요구? 북핵 이슈 의제될 듯=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대한 정부의 기류 변화는 확실해 보인다. 현재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3국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사실상 0%라고 했던 입장과는 커다란 차이다.

정부가 이렇듯 입장 선회에 나선 이유는 우선 미국의 적극적인 요구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악화된 한·일 관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두 나라의 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희망해 왔다. 특히 미국으로선 지난 2월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한·일 두 나라가 역사 문제는 뒤로 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거듭 촉구한데서 보듯 미국의 양대 동맹인 한·일 두 나라의 관계 정상화가 절실하다. 특히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와의 대결 양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동북아에서의 한·미·일 3각 안보협력 필요성을 절감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서도 미국의 이런 요구를 무작정 거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동북아 안보협력을 주요 의제로 해서 한·미·일 3각 공조 방안을 논의하자는 미국의 입장을 껄끄러운 한·일 관계 때문에 거절하기는 명분이 약하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3국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네덜란드 헤이그라는 제3의 장소에서 미국의 초청으로 한·일 두 나라가 참가하되 의제는 포괄적 현안이 아닌 북핵 등 안보 이슈에 집중하는 회동 형식이 유력해 보인다. 또 핵안보정상회의가 주로 군축 및 비확산 문제를 주로 다루는 만큼 북핵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적절한 장소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천명한 ‘통일 대박론’을 위해선 미국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과의 전폭적 협력이 필요한데 경색된 한·일 관계를 방치하는 것은 우리 정부로서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19일 한·일 양자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선 “여러 여건상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으나 3국 정상회담에 대해선 “정해진 게 없다”며 확연한 뉘앙스 차이를 보였다.

◇한·일 양자회담 전초전 되나=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해서 곧바로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국면 전환의 계기는 충분히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냉각기만 이어오던 양국 관계는 최근 일주일 새 미묘하게 바뀌는 분위기다. 아베 총리가 지난 14일 국회 답변을 통해 일본군 강제동원 위안부를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담화의 계승 입장을 밝힌 점, 오는 26일로 예정됐던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도 4월 초로 연기한 점 등이 기류 변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힌다. 박 대통령 역시 지난 15일 아베 총리 발언에 대해 “다행스럽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은 오랜 기간 경색됐던 한·일 간 화해의 실마리를 찾고, 아베 총리의 진정성을 살필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