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가지가 보름달을 품었네!… ‘섬진강 꽃길’ 對 ‘지리산 꽃길’

입력 2014-03-20 02:36


봄의 길목인 ‘섬진강 꽃길’과 ‘지리산 꽃길’이 분주해졌다. 일주일 전 남도에 봄비와 춘설이 난무하더니 매화와 산수유꽃이 서둘러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벚꽃은 꽃망울이 부풀기 시작했다. 섬진강 꽃길은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을 연결하는 섬진교에서 화개장터 앞 남도대교까지 19㎞ 구간. 섬진강 서쪽을 달리는 861번 지방도는 매화꽃길이고, 반대편 하동 땅을 달리는 19번 국도는 벚꽃길이다. 지리산 꽃길은 노란 산수유꽃이 점묘화를 그리는 구례 산동면 일대에 이어진다.

남도의 봄은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청매실농원에서 첫 번째로 절정을 맞는다. 지난 주말에 청매실농원의 장독대까지 올라온 매화는 이번 주말에 초가집으로 유명한 문학동산까지를 하얀 꽃구름처럼 뒤덮을 전망이다. 매화마을은 본래 밤나무가 무성한 강마을이었으나 홍쌍리 매실명인이 한평생 돌산을 개간해 청매실농원을 일구면서 형성됐다.

매화는 밤에 더욱 매혹적이다. 백운산 너머로 해가 지고 섬진강 주변 하늘이 암청색으로 물들면 백매화가 더욱 하얗게 빛난다. 이어 어둠에 묻혔던 섬진강 물줄기가 달빛에 모습을 드러낼 즈음 하얀 매화도 그 달빛에 젖어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 백운산 자락을 수놓는다. 어느 순간 구름사이로 나타난 보름달, 매화나무 가지에 걸린다. 이당 김은호 화백의 매화 그림이 이처럼 낭만적일까.

청매실농원 최고의 비경은 영화 ‘취화선’과 드라마 ‘다모’를 촬영한 대숲길. 섬진강 봄바람이 대숲을 빗질하듯 휩쓸고 지날 때마다 댓잎 스치는 소리는 일상에 찌든 심신을 청량하게 씻어준다. 대숲길에서 쫓비산 등산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청매실농원의 트레이드마크인 장독대를 비롯해 매화마을과 섬진강, 그리고 강 건너 하동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22일부터 30일까지 매화마을 일원에서는 ‘봄의 길목 섬진강, 매화로 물들다’를 주제로 ‘광양 국제매화문화축제’가 열린다.

섬진강 매화가 활짝 피면 지리산 산수유꽃도 질세라 샛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화개장터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 읍내를 지나 지리산 만복대 기슭에 위치한 구례 산동면에 들어서면 온 마을이 붓으로 노란색 물감을 찍은 듯한 풍경화가 펼쳐진다. 산비탈과 논두렁은 물론 밭둑과 고샅에도 샛노란 꽃구름이 내려앉은 듯하다. 산수유꽃이 피는 마을은 상위마을을 비롯해 반곡마을, 계척마을, 현천마을 등 산동면 일대의 크고 작은 30여 마을.

노랗게 물든 상위마을 풍경을 한눈에 보려면 마을 정자인 산유정에 올라야 한다. 만복대 자락에서 흘러내린 부드러운 곡선의 다랑논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 그리고 대숲과 산수유 군락이 점묘화와 다름없다. 푸른 이끼로 뒤덮인 엉성한 돌담 안에는 예외 없이 산수유 고목이 자란다.

상위마을 아래에 위치한 반곡마을의 대평교는 드라마 ‘봄의 왈츠’를 촬영했던 곳으로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에는 떡판처럼 펑퍼짐한 수천 평 넓이의 널름바위가 계곡을 뒤덮고, 산수유나무는 계곡에 가지를 드리운 채 화사한 봄날을 보내고 있다.

산수유가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어딜까. 견두산 자락에 위치한 현천마을이 단연 꼽힌다. 돌담에 둘러싸인 함석집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댄 현천마을은 마을 전체가 산수유나무 고목으로 둘러싸인 꽃동네다. 마을 입구의 저수지에 비친 산수유꽃의 반영이 여행객을 사로잡는다. 구례군도 22일부터 30일까지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를 주제로 산동면 지리산온천관광지 일원에서 ‘구례산수유꽃축제’를 진행한다.

남도의 봄은 하동의 벚꽃길에서 완성된다. 하동에서 벚꽃이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벚나무 가로수가 연분홍 터널을 이루는 평사리 입구에서 화개장터까지 9㎞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5㎞. 이 중에서도 왕복 2차선의 벚꽃길이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갈라지는 화개초등학교 주변의 벚나무는 수령 70년이 넘은 고목들이라 벚꽃으로 하늘을 빈틈없이 가린다. 하동군의 화개장터 벚꽃축제는 29일부터 30일까지 화개장터와 쌍계사 일원에서 열린다.

김동리 단편소설 ‘역마’의 무대이자 ‘박경리 토지길’과 ‘이순신 백의종군로’가 지나가는 화개장은 가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로 유명해졌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남도대교 앞에 위치한 화개장은 양 지역의 산물이 모이는 시골장. 끝자리가 1일과 6일인 날에 열리지만 장날보다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에 더 붐빈다. 초가지붕이 멋스런 장옥에는 재첩국이나 장터국밥을 파는 음식점과 건어물점 등이 들어서 있다.

광양·구례·하동=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