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에게로 와서 ‘바다꽃’이 되었다… “향긋한 봄맛” 통영 양식멍게 수확 진풍경

입력 2014-03-20 02:31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경남 통영에 봄이 한창이다. 산양해안도로를 수놓은 동백꽃은 청사초롱처럼 빛나고 바닷가 야산에 뿌리를 내린 진달래와 매화는 수줍으면서도 청초한 얼굴로 오가는 여객선을 바라보고 있다. 서피랑의 허물어진 집터에서는 봄까치 꽃이 조그만 얼굴을 내밀었고, 통제영 후원의 목련은 꽃망울이 한껏 부풀었다. 그리고 통영 앞바다에서는 꽃보다 아름다운 멍게가 봄내음을 머금은 채 수면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통영의 봄은 바다 속에서 자란다. 육지에서 동백꽃이 피기 시작하면 통영 앞바다에서는 양식 멍게가 본격적인 출하철을 맞는다. 젖꼭지를 닮은 오돌토돌한 돌기가 파인애플을 닮은 멍게는 갑옷처럼 단단한 껍질이 주황색이라 ‘바다의 꽃’으로 불린다.

통영과 거제를 비롯한 남해안에서 생산되는 양식멍게는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통영에서도 멍게양식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은 한산도 앞바다. 해마다 이맘때면 산양읍 영운리 포구는 뗏목 위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멍게를 선별하고 세척하는 진풍경이 하루종일 펼쳐진다.

영운리에서 20년째 멍게양식을 하고 있다는 영운수산 대표 김점렬(55)씨가 노련한 솜씨로 어선의 키를 잡는다. 어선 뒤에는 밧줄로 연결된 작은 배가 어미를 따라가는 새끼 오리처럼 한 쌍이 되어 파도를 가른다. 포구를 벗어나 10분쯤 통영의 봄바다를 달리자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에 하얀색 스티로폼 부표가 둥둥 떠 있는 멍게 양식장이 반긴다.

통영을 중심으로 멍게 양식이 시작된 때는 1974년. 멍게는 한 개체가 난소와 정소를 모두 가진 자웅동체로 하루 1만2000여개씩 2주 동안 알을 낳는다. 올챙이 모양의 유생은 물 속을 떠다니다 야자수나무 껍질로 만든 팜사에 달라붙는다. 이 팜사를 봉줄로 불리는 5m 길이의 밧줄에 둘둘 말아 바다에 입식한다. 한겨울에 입식된 멍게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청정해역으로 인증한 통영 앞바다에서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2년 후 멍게가 어른 주먹 크기로 자라면 2월부터 5월까지 출하한다. 통영과 거제지역 1200㏊ 양식장에서 생산되는 멍게는 한해 2만여 톤으로 600억 원어치.

멍게 출하 작업은 단순해 보이지만 품이 많이 든다. 큰 배와 밧줄로 연결된 작은 배가 수백 미터 길이의 간승줄 사이로 들어간다. 갈고리로 간승줄을 걷어 올려 배 양쪽의 고리에 걸면 간승줄에 촘촘한 간격으로 매달린 봉줄이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주황색 멍게가 다닥다닥 붙은 봉줄은 전봇대보다 더 굵다. 봉줄 1개에 매달린 멍게의 무게는 약 100㎏.

김점렬씨가 간승줄에 매달린 봉줄을 풀어 선미로 옮긴다. 초록빛 바다에 주황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봉줄에 매달린 멍게 다발이 물속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이동한다. 김씨가 뱃전에 바싹 엎드려 봉줄을 선미에 묶는 동안 반대편에서도 한 명의 어부가 똑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이렇게 걷어 올린 봉줄은 모두 50여개로 시가는 1500만원 정도. 어민들이 멍게양식장을 ‘바다의 노다지’로 부르는 이유다.

통영시가지를 비롯해 미륵도, 한산도, 화도 등에 둘러싸인 멍게 양식장은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격전의 현장이다. 1592년 7월 8일에 좌수영을 출발한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 등으로 적선 150여척을 유인한 후 학익진(鶴翼陣) 전법으로 왜선 66척을 격파했다. 멍게 양식장 남쪽에는 한산대첩기념비가 우뚝 솟아 그날의 승전을 증언하고 있다.

멍게 다발을 작은 배로 옮겨 싣는 작업이 끝나면 승선을 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진다. 멍게를 실은 작은 배는 다시 큰 배에 밧줄로 연결된다. 양식장으로 올 때는 전속력으로 달려왔지만 영운리 포구로 돌아갈 때는 최대한 느린 속도로 달린다. 거친 파도에 멍게가 상처를 입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작은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물 속에 가라앉았던 멍게 다발이 부력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폭 3m, 길이 5m 정도의 주황색 멍게 다발이 수면을 가르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나 마찬가지. 한국 추상화의 대가로 불리는 통영 출신 전혁림 화백의 색채가 이처럼 강렬할까? 장사도 동백숲의 동백꽃이 모두 떨어지면 이런 모습이 재현될까? 주황색 바다 위로 갈매기들이 온갖 비행술을 선보이며 따라오고, 한산도와 욕지도를 오가는 여객선들은 주황색 꽃밭과 어우러져 장난감처럼 앙증맞다.

포구로 옮겨진 멍게 다발은 이동 중에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하루 동안 바닷물 속에서 지낸다. 이튿날 날이 밝으면 뗏목 작업장에서 멍게 선별작업과 세척작업이 진행된다. 멍게 다발에는 멍게만 살고 있지 않다. 멍게 사촌격인 미더덕을 비롯해 홍합, 해초류 등이 붙어 있다. 아낙들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포도송이처럼 붙어있는 멍게를 하나씩 떼어내고 홍합 등을 제거하면 세척작업을 거쳐 곧바로 포장돼 팔려나가거나 급속 냉동된다.

멍게의 독특한 향과 맛은 먹고 난 후에도 한동안 입안에서 감돈다. 멍게 특유의 쌉쌀하고 달달한 맛은 불포화알코올인 신티올 때문이다. 신티올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당뇨병 예방과 숙취를 해소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화를 방지하는 타우린 함량도 높고 에너지원인 글리코겐, 그리고 치매 예방에 좋은 프라스마로겐 등이 함유돼 멍게는 바다를 대표하는 건강식품으로 꼽힌다.

딱딱한 껍질을 깐 후 노란 속살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젓갈 재료로 사용되던 멍게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멍게비빔밥이 나오면서부터. 최근에는 멍게샐러드를 비롯해 멍게전, 멍게까스, 멍게튀김, 멍게전골 등 다양한 멍게음식이 개발돼 미식가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바다의 꽃’ 멍게가 꽃밭처럼 펼쳐지는 통영의 바다. 남도의 봄은 쪽빛 색깔이 아름다운 그곳에는 무르익는다.

통영=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