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민수] 부자들의 부부싸움
입력 2014-03-20 02:35
재계에 ‘부부싸움’이 때 아닌 화제다. 국내 굴지의 파고다어학원이 최근 경찰의 압수수색까지 받았는데, 그 중심에는 박경실 파고다아카데미 대표와 설립자 고인경 전 회장의 경영권 다툼이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원은 지난달 수백억원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박 대표에 대한 수사는 고 전 회장의 고발로 시작됐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부부다. “통장과 인감을 아내에게 맡겨뒀더니 재산을 빼돌렸다”는 게 남편 고 전 회장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살인예비음모 의혹까지 나왔다. 1979년 결혼한 두 사람은 연매출 800억원(2012년 기준)대의 학원재벌을 일궈냈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사이로 변했다.
파고다어학원과 코나아이
스마트카드업체 코나아이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부부가 갈등을 겪고 있다. 남편 조정일 대표이사 부회장은 아내 김진희 사장을 얼마 전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해임해 버렸다. 부부싸움이 날로 커지면서 코스닥 상장사인 코나아이의 실적 부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 회사는 시가총액이 4000억원대에 육박하는 중견업체다.
한때 재계 서열 5위까지 올랐던 동양그룹의 몰락에도 남편 현재현 회장과 부인 이혜경 부회장 간 알력이 있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이 부회장의 비선라인이 현 회장 측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그룹이 무너지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은 배달, 부인은 음식 조리를 하며 골목식당을 일약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로 키운 A씨 부부. 하지만 갈등 끝에 이혼했고 부인이 혼자 운영해온 회사는 외국계로 넘어갔다.
이쯤 되면 부부싸움이라고 모른 체하기에는 사안이 엄중하다. 칼로 물을 베는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부부도 다툴 수 있다. 날마다 웃음꽃이 피는 관계를 기대할 수만은 없다. 싸움을 하다 격해지면 경찰서에 갈 수 있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치는 파장이 다르다. 일반인들이야 부부가 갈라서면 자식들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부부 경영인이 충돌하면 멀쩡한 기업 하나를 결딴낼 가능성이 높다. 많게는 수만명의 직장인 생계가 두 사람 싸움으로 흔들릴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부부 경영인들의 금실까지 신경 써야 하는 지경에 처한 셈이다.
이처럼 부부 경영인이 쉽게 화해를 하지 못하는 데에는 결국 ‘돈’이 개입돼 있어서다. 돈 앞에서 수십 년을 같이한 부부의 정은 한순간에 거추장스러운 장애로 돌변하고 있다.
게이츠처럼 사회환원하기를
이들에게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 멜린다 게이츠를 모범 부부상(像)으로 추천한다. 돈만 밝히는 졸부(猝富)라도 빌 게이츠가 누군지는 알 것이다. 이달 포브스가 발표한 2014년 세계 부호 순위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그는 760억 달러(81조4900억원)로 1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재산이 111억 달러(102위)인 점을 감안하면 게이츠가 얼마나 큰 부자인지 알 수 있다. 그런 게이츠와 멜린다는 2000년 ‘빌앤드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만들고 기부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빈민지역 교육환경 개선 18억5000만 달러, 저소득층 장학사업 16억 달러, 대학생 장학금 5억 달러, 소아마비 퇴치 3억5500만 달러, 말라리아 백신과 결핵 백신 개발 각각 1억7000만 달러, 8300만 달러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우리의 부부 경영인들도 생을 마감할 때 갖고 갈 수도 없는 돈을 놓고 죽기 살기로 싸우지 말고 이제는 사회에 환원할 방법을 찾아볼 때다.
한민수 산업부장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