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 백영훈 원장 “독일 차관, 하나님 지혜 없었다면 불가”
입력 2014-03-19 03:33
저자와 만남
‘조국 근대화의 언덕에서’ 쓴 KID 백영훈 원장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5일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초청으로 국빈 방문한다. 이를 바라보는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백영훈(85·서래교회 장로) 원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대한민국 경제개발의 주역이자 산증인인 백 원장은 국비 장학생 1호이자 서독 유학생 1호로 1956년 겨울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 에를랑겔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대한민국 경제학 박사 1호’다. 59년 서독 엘 하드 경제장관 방한 때 통역관으로, 중앙대 교수로 재직하던 62년엔 서독에 파견되는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동행했다. 이를 계기로 64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에선 통역보좌관으로 수행했다. 이번 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이 특별할 수밖에 없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KID 사무실에서 백 원장을 만났다.
-50여년 만에 부친에 이어 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합니다. 느낌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참 가난했어요. 군사혁명 정부라고 미국은 외면했고 일본 역시 ‘국교도 수립되지 않은 나라에 돈을 빌려줄 수 없다’며 냉담했지요. 혁명 정부가 꿈꿨던 경제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사면초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생각했던 제3의 길이 바로 서독이었습니다.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경제성 장관을 만나기 위해 그와 같은 대학 출신의 저의 스승을 찾아갔지요. ‘장관님 좀 만나게 해 달라’고 얼마나 졸랐는지….”
최근 백 원장이 출간한 ‘조국 근대화의 언덕에서’(마음과생각)을 보면 오로지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로 뛰어온 그의 50년 발자취가 잘 기록돼 있다.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독일을 방문해 상업차관 1억5000만 마르크(약 3500만 달러)를 들여온 것은 한편의 감동 드라마다. 경부고속도로, 울산·구미·창원 공업단지 건설 등 우리나라 경제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역정의 정사(正史)들도 두루 담겨 있다.
-책에서 보니 서독 정부의 차관 승인 후 많이 힘들었습니다.
“차관 가운데 절반은 정부 차관으로, 나머지는 민간 차관으로 받게 되는데, 이 민간 차관을 받으려면 제3국 은행의 지급 보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의 어느 은행에서도 지급 보증을 받아올 수 없었어요. 한국대사관 지하실에서 몇 날 며칠을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독 정부의 노동성 과장으로 일하던 제 대학 동기가 ‘방법이 있으니 오늘만큼은 편히 자라’고 말하더군요. 서독에서 일할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주면 그들 급여를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겠습니까.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백 원장은 독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는 전북 김제시 봉월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 교회는 일본인 마스도미 장로가 일제강점기에 세웠다. 백 원장은 “권사였던 어머니는 아홉 자녀를 위해 늘 새벽같이 무릎기도를 드렸다”고 회상했다.
-책에도 어머니의 기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지금도 ‘가난한 자식들을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나님의 거룩한 재목으로 키워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던 어머니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유학길에 오르던 날,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영광이고 책임이다. 열심히 공부 마치고 와서 하나님의 복 받는 나라에서 큰 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지요. 시련을 만나면 언제나 그 말씀을 되새기며 이겨나갔습니다.”
-일평생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민해온 흔적을 책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텐데요.
“우리 국민들은 역사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100년 전 조상이 실패한 역사의 기록을 거울삼아 한민족의 시대를 열기 위해 미래의 어젠다를 찾아 모든 역량을 총결집해야 합니다. 과거 문제에 연연해 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보고 한마음 한뜻으로 나가야 합니다. 미래를 꿈꾸십시오. 세계를 우리 땅으로 생각하십시오. 개척정신을 가지십시오. 분명한 건 21세기는 코리아의 시대입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