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결국…’에 속아 클릭해보면 허탈한 기사, 해도 너무한 뉴스스탠드 ‘낚시 제목’
입력 2014-03-19 02:31
[친절한 쿡기자] 만화가 겸 스토리 작가 양찬호(30)씨는 최근 ‘마사토끼’라는 트위터에 ‘낚시 기사 스포일러 전문 인터넷뉴스 회사를 만들자’는 글을 올렸습니다. 제목이 “20대 여대생 빚에 몰린 끝에 결국…”이란 기사가 있으면 클릭하지 않아도 독자가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제목 뒤에 “개인파산 신청했음”을 붙여주는 ‘친절한’ 방식입니다. 이 트윗은 수백 차례 리트윗 되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독자들의 ‘낚시’ 제목에 대한 불만이 높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글을 보고 ‘친절한 쿡기자’ 정신이 발동했습니다. 51개 언론이 모여 있는 네이버 뉴스스탠드에 들어가 18일 하루 낚시 제목을 단 기사들의 본문을 살펴봤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일부는 여전히 뉴스스탠드를 ‘낚시터’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윤창중 성추행 희생자, 10개월 만에 결국…’ 한 종합일간지가 오전에 네이버 뉴스스탠드에 올린 기사 제목입니다. 붉은색으로 강조돼 있었습니다. 순간 긴장했습니다.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당시 성추행 피해자라면 워싱턴에 있을 것이고, 언론과의 접촉을 1년 가까이 피해온 그를 설득해 전모를 파악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클릭하는 순간, 허탈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희생자’는 주미 한국대사관 인턴 여성이 아닌 당시 청와대 이남기 홍보수석이었습니다. 기사의 가려진 부제는 “이남기 전 홍보수석, KT스카이라이프 대표 내정”입니다. 이 전 수석은 윤 전 대변인의 망동으로 물러났다가 10개월 만인 지난 10일 ‘낙하산 사장’이 됐습니다. 8일이나 지난 뉴스에 낚시 제목을 내건 이 기사에는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댓글이 붙었더군요.
또 있습니다. 사진으로도 낚시를 합니다. ‘택시 안에서…’ 라는 제목으로 톱에 걸린 사진은 누군가 여성의 치마 속에 손을 쑥 넣는 장면입니다. 클릭해보니 한국이 아닌 영국, 자사 취재가 아닌 해외 매체 인용, 무엇보다 치마에 손을 넣은 이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습니다. 네이버 옴부즈맨은 “선정적”이라고 경고했더군요.
다른 일간지의 영문 자매지는 영어 피싱 기술을 보여줍니다. ‘NK females sexier life pa…(북한 여성들 성 생활…)’를 클릭하면 “탈북 여성이 남한의 결혼정보회사에서 인기 있다”는 탈북자 소식통 보도가 나옵니다.
기사에 낚시 제목을 붙이는 건 뉴스가 사실상 무료로 인터넷 바다에 뿌려지는 데서 비롯됩니다. 기사의 조회수만이 수익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국민일보 쿠키뉴스라고 해서 여기서 자유롭지는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제목 장사는 해도 너무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클릭만 하게 만들면 끝’이라는 천박한 저널리즘이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뉴스사이트에 한 번 속은 독자가 또 그곳에 들어가지는 않을 테지요. 그래서 기획물을 고민 중입니다. 잘 알려진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이름을 빌려 낚시 제목을 친절하게 소개해주는 ‘오늘의 낚시’ 코너를 만들면 어떨까요.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