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푸틴 최측근 등 제재… “脫냉전 이후 가장 강력”
입력 2014-03-18 03:33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 주민들이 예상대로 러시아 귀속을 선택하면서 공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미국 등 서방은 크림공화국 주민투표를 사실상 방조한 러시아 앞에 추가 제재 카드를 꺼내 보이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푸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이지만 아직 크림공화국을 러시아연방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다. 국면 전환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얘기다.
◇미국·유럽, 러시아 강력 제재 나서=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을 포함해 러시아 정부·의회 관료 7명을 제재하는 내용의 행정명령(EO)을 발동했다. 이와 별도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에 대해서도 제재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로 명단에 포함된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고 여행도 금지된다. AP통신은 냉전 이후 러시아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제재라고 전했다. 유럽연합(EU)도 동시에 러시아와 크림공화국 관리 21명에 대해 여행 제한과 재산 동결 조치를 취했다.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건 러시아의 결정권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크림이 러시아연방이 되려면 러시아 하원과 상원의 승인을 각각 거쳐 푸틴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크림공화국은 러시아가 하기에 따라 러시아연방이 될 수도, 우크라이나에 남을 수도 있다. 크림 병합 안건이 러시아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다. 러시아 상·하원 의장은 그동안 크림 주민투표 결과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무엇보다 그 자체로 효력이 발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서방과의 협상용 카드로 쓰기 위해서라도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다.
◇푸틴의 선택은=푸틴 대통령은 18일 하원인 국가두마에서 크림공화국 투표와 관련해 연설할 예정이다. 이 연설에서 대략적인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크림을 협상의 지렛대로 쓸 수 있는 ‘꽃놀이패’는 푸틴 대통령이 서명하기 전까지 유효하다. 일단 서명하고 나면 러시아는 주도권을 잃을 공산이 크다. 더 이상 쓸 만한 패가 없어진 러시아는 서방과 전면전을 벌이며 경제·외교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크림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긴 해도 실익을 따지자면 러시아가 크림 병합으로 얻는 게 국제적 고립으로 잃는 것보다 많다고 보기 어렵다. 러시아가 크림을 받아들이면 인프라 개선 등에 연간 30억 달러를 써야 한다는 예측이 나온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푸틴이 마지막 단계에서 병합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제사회의 우려나 우크라이나의 안정 등을 명분으로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크림 주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정인 만큼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와 협상해 크림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식의 중재안을 도출할 수도 있다. 또 과도정부 체제를 정리하고 새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친러시아 진영의 지분을 보장하도록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서방과 러시아는 이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더욱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독립 절차 속속 진행=미하일 말리셰프 크림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17일 주민투표 집계 결과 96.77%가 러시아 귀속 방안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이의를 달기 어려울 정도의 몰표를 얻은 셈이다.
투표 결과가 나오자 크림공화국 의회는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과 러시아 귀속을 결의했다. 의회는 이번 결의에 따라 크림공화국 영내에 있는 모든 우크라이나 정부 재산을 자국 소유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의회 의장은 “크림반도 내에 있는 우크라이나군도 해산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도 크림공화국의 제2 공식화폐로 정해졌다. 루스탐 테미르갈리예프 크림공화국 부총리는 “러시아로부터 3000만 달러를 지원받아 중앙은행을 설립할 것”이라며 “러시아 중앙은행의 지점 역할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