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유출 개인정보 시중유통에 분노… 집단소송 참여 늘듯
입력 2014-03-18 03:55
카드3사 피해자들 ‘권리찾기’ 새 국면
KB국민·롯데·NH농협카드 등 카드3사에서 유출된 개인정보 가운데 상당수가 시중에 유통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분노한 국민의 ‘권리찾기’도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법조계는 정보유출 당사자들의 피해가 창원지검의 발표로 입증된 셈인 만큼 소송 참여자들의 승소 가능성과 손해배상액이 높아졌다고 본다. “어차피 내 정보는 한낱 공공재가 됐지만, 통장에 몇만원이 꽂히는 꼴이라도 봐야겠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소송가액이 불어날 것이 분명해지면서 카드사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위자료 선례 10만∼20만원=17일 법조계와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소비자원 등에 따르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손해배상액은 10만∼20만원 정도다. 서울서부지법은 중국 소재 해커가 SK컴즈의 개인정보 3500만건을 빼낸 2011년의 사건과 관련, 소송 제기자마다 20만원씩을 배상해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해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사태처럼 금융회사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된 경우에도 정신적 손해배상이 인정된 선례가 있다. 서울고법은 KB국민은행 직원이 광고 이메일을 발송할 때 3만명의 개인정보를 첨부한 2007년 사건에 대해 “정신적 고통이 인정되고 회사도 이를 예견할 수 있었다”며 위자료를 지급토록 판결했다. 주민등록번호까지 노출된 이들은 20만원을, 기타 성명과 이메일·주소 등이 유출된 이들은 10만원을 배상받았다.
위자료가 30만원에 이른 판결도 있다. 2006년 발생한 LG전자의 입사지원서 열람 사건이다. 당시 LG전자 지원 홈페이지가 취약함을 파악한 한 입사지원자는 “LG전자의 모든 지원서는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제목으로 포털 사이트에 링크를 게시했고, 실제로 3000여명의 지원서가 열람됐다. 서울고법은 “당시의 기술수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신입사원 채용 목적으로 보관 중인 개인정보의 분실·도난·누출 등 방지에 필요한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정신적 고통에 대해 보상하라고 판시했다.
모든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위자료 지급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2008년 GS칼텍스 직원이 USB로 고객 정보 유출을 시도했던 사건의 경우 손해배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초기 검거에 따른 정보 조기 회수로 열람 위험성이 사라졌다” “막연한 불안감은 인정되지만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이 해킹당한 사건도 “회사는 법령이 요구하는 조치의무를 모두 이행했다”는 이유로 원고들이 소송에서 졌다.
◇“20만원보다 더 받아낼 수도”=애초 법조계는 카드사 용역 직원이 USB에 데이터를 담아 외부로 빼돌린 이번 사건이 GS칼텍스 사건과 유사하다고 봤다. 범행을 빨리 파악해 시중 유통을 막았다는 점에서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우며, 이 때문에 손해배상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컸다. 한국소비자원도 지난 1월 “유출된 정보가 제3자에게 제공되지 않은 이상 손해배상은 인정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출 정보가 시중에 유통됐음이 밝혀지면서 국면은 뒤집혔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이 역사적인 손해배상 사례로 남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개인정보 전문가이기도 한 법무법인 민후의 김경환 변호사는 “시중에 유통된 사실이 입증된 만큼 통상적으로 개인정보 주체는 더 큰 정신적 고통과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며 “이 점을 잘 피력하면 법원이 인용하는 위자료 액수가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승소한다면 현재 일반적인 손해 배상액인 20만원보다는 많은 액수가 인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정신적 피해를 주장하는 공동소송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시효가 3년인 만큼 검찰의 수사 결과 및 카드사의 배상 계획을 천천히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각종 공동소송 기획 인터넷 카페에서는 “대리운전업체나 유흥업소에서 귀찮게 날아오는 메시지들을 미리미리 캡처해 두라”는 조언이 오간다. 소액주주 소송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무법인 한누리의 김정은 변호사 역시 “추가 유통 사실에 따라 승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다”며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신호가 보인다면, 전 국민이 당한 사건인 만큼 소송 참여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