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수준” 찬사 그녀의 ‘위대한 유산’… 2009년 타계한 안무가 피나 바우슈 ‘풀 문’ 한국 첫선

입력 2014-03-18 02:45


검고 어두운 무대 위에 불쑥 솟아오른 듯 거대한 바위가 놓여 있다. 무용수들이 바위 옆에서 폭우처럼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춤을 춘다. 여자 무용수들은 물에 젖은 드레스를 끌고 머리를 휘날리며 춤을 추고, 남자 무용수들은 물웅덩이와 바위를 달리기하듯 빠르게 오가며 역동적인 몸짓을 보여준다. 음악과 함께 어우러진 무용수들의 율동이 아름다우면서도 인상적이다.

독일의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슈(1940∼2009·사진)가 2006년에 만든 ‘Full Moon(보름달)’ 공연의 장면들이다. 바우슈는 무용과 연극의 경계를 허문 ‘탄츠테아터(Dance Theatre·댄스시어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세계 무용계에 뿌리내리게 한 안무가다. ‘풀 문’은 바우슈가 오로지 자신의 무용단 ‘피나 바우슈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위해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 처음 공연됐을 때 “절대적 수준의 작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세계 무용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현대무용의 혁명가’로 불리는 바우슈의 대표작인 이 무대가 한국에 온다. 오는 2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로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2012년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피나’를 통해 소개된 바 있지만, 실제 공연은 처음 선보인다.

수천 송이 카네이션을 무대에 피운 ‘카네이션’(2004), 바닷가 절벽이 무대에 설치된 ‘마주르카 포고’(2003), 한국을 무대 배경으로 한 ‘러프 컷’(2006) 등에 이어 바우슈 작품의 7번째 한국공연이다. 바우슈와 20년 세월을 함께한 관록의 무용수들과 젊은 무용수들의 조화가 돋보인다. 이번 내한공연에는 도미니크 메르시 부녀, 페르난도 슈엘, 헬렌 피코 등 실력파 무용수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바우슈 작품의 테마는 언제나 ‘인간’과 ‘소통’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의 인간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그려냈다. 사랑과 욕망, 불안과 공포, 상실과 고독, 슬픔과 고뇌, 폭력과 파괴 등 심오한 주제들을 자유로운 형식의 무대에 담아냈다. 그의 작품에는 정해진 플롯이나 특정한 캐릭터가 없다. 변화무쌍한 이미지로 관람객들에게 감성을 호소한다.

‘풀 문’ 역시 무용수들이 물과 함께 뒹굴고, 첨벙대며, 바위 위를 기어 다니는 등 파격적이다. 두 무용수가 번갈아 가며 서로를 지탱하는 오프닝 장면부터 열두 명의 무용수가 물 속에서 미친 듯이 선회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시종일관 눈길을 붙잡는다. 자연에서 가져온 배경과 소품들은 독특한 색과 향기를 선사하며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뎌진 감각을 자극한다.

“나는 무용수들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보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고 강조한 바우슈의 말대로 무용수들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다. 역동적인 몸짓과 인상적인 음악의 조화를 통해 인생의 황홀경과 그 안에서 느끼는 불안감, 두려움 등을 동시에 드러내는 무대다. 평일 오후 8시·토요일 오후 7시·일요일 오후 4시 공연. 관람료 4만∼12만원(02-2005-011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