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신종수] 공짜버스에 대하여

입력 2014-03-18 02:50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짜버스’ 얘기가 나와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기억나는 가장 오래된 버스요금은 중학교 시절의 35원이다. 학교에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갔지만 집에 올 때는 버스비로 친구들과 군것질을 한 뒤 한 시간 이상을 걸어오곤 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버스비를 안 낸 적도 있다. 경황이 없는 안내양이 미처 버스비를 달라고 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만원버스는 일상이었다. 아침 등교시간에는 개문발차(開門發車)하는 버스 문에 안내양이 매달려 승객들을 밀어 넣었다. 요즘과 달리 그때 버스 천장은 왜 그리 낮았던지. 키가 부쩍 컸던 고교 때는 환기통에 머리를 넣기도 했다.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머리를 앞뒤로 ‘따다닥’ 찧었다는 농담은 단골 메뉴가 됐다. 대학 때는 버스 토큰과 회수권이 있었다. 회수권은 한 장에 90원 정도 했다. 구내 학생식당에서 돈 대신 10장짜리 버스 회수권을 냈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공짜버스 공약은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쟁점이 됐던 것과 비슷하다. 당시 무상급식 공약을 내놓았던 민주당 경기지사 예비후보인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이번에는 무상 대중교통 공약을 내놓았다. 이번에도 인화성이 커 보인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만 하루 125만명에 이른다. 버스를 공짜로 탈 수 있도록 하겠다면 누구나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서민들은 물론 중산층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공짜’의 힘은 세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대결하면 보편적 복지가 이기곤 한다.

2011년 전면적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주민투표 끝에 물러나고 무상급식을 전면 시행한 것이 단적인 예다. 소득 하위 50% 학생에게만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자는 오 시장과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복지 확대는 시대적 요구처럼 돼 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진보세력이 적극적이지만 보수진영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과 총선 등에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모든 노인에 대한 기초연금 지급 등을 핵심공약으로 제시했다. 정치권에서 무상의료나 고속도로통행료 무료 등의 공약이 나올 날도 멀지 않았다.

버스공영제를 주장하는 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김 전 교육감의 무상버스 공약을 비판하고 나섰으나 이미 무상버스 프레임에 갇힌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파괴력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재원이다. 김 전 교육감이 주장한 공짜버스만 해도 연간 운영비만 1조9000억원, 버스회사 인수에만 수조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별적 복지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가난한 사람들만 공짜로 태워주지 왜 부자들까지 공짜로 타게 해 국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담시키느냐는 것이다. 선별적 복지야말로 세금 부담도 경감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방법이라는 논리다.

정쟁 아닌 정책 대결해야

그러나 보편적 복지론자들은 치안 서비스처럼 보편적 복지가 확대돼야 사회통합과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반론을 편다. 부자동네는 사설경호원들에게 맡기고 달동네만 경찰을 배치할 수 없듯이 복지는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서는 결국 증세를 하거나 다른 곳의 예산을 깎아야 한다. 그러나 김 전 교육감은 “복지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복지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정쟁이나 이념 갈등이 아닌 정책대결이 돼야 한다.

신종수 사회2부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