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醫·政대립 처음부터 대화로 풀 수 있는 것을
입력 2014-03-18 02:21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원격진료 등 핵심 쟁점에 대해 합의점을 도출함에 따라 오는 24일로 예정된 의료계의 집단휴진이 철회될 것으로 보인다. 원격진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6개월간 시범사업을 시행한 후 그 결과를 입법에 반영키로 합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의정(醫政) 간 대립이 뒤늦게나마 대화로 타결된 것은 다행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협의를 통해 풀 수 있는 쟁점들을 놓고 환자를 볼모로 한 집단행동과 이에 대한 처벌 위협으로 서로 맞서야 했는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야 했는지 차분한 반성이 필요하다.
합의 내용을 살펴보면 의료계의 요구가 대폭 반영됐다. 원격진료의 경우 시범사업의 기획·구성·시행·평가를 대한의사협회와 정부가 공동 수행하기로 했다. 의료계로서는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원격진료의 적용 범위와 확산 속도 등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중요한 합의사항으로 진료비 결정 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의료계 측 인사를 늘리기로 한 것을 들 수 있다. 현재 건정심의 구성원 중 공익대표 8명 가운데 정부추천 4명을 가입자와 공급자 동수 추천으로 연내에 법을 바꾸기로 했다.
합의사항들은 주요 쟁점들의 답안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도출할 것이냐는 방법을 둘러싼 것이다. 따라서 의·정 간, 의료계와 보험 가입자 간 다툼의 불씨는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각자에게 유리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려 한다면 시범사업 자체가 산으로 가버리거나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의료법인의 영리 자법인 설립에 따라 우려되는 문제점 개선을 위한 논의 기구 운영도 마찬가지다. 반대편의 입장과 논거를 듣고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난마처럼 얽힌 국내 의료계와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은 요원하다. 의료수가 문제는 이들 주요 쟁점의 합의 방향이 드러난 후에 중장기적 전망을 토대로 논의해도 늦지 않다. 건강보험의 보장 항목과 건보료 인상폭 등에 관한 논의와 함께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로서는 의료계의 단체행동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는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철도노조의 파업 등 다른 이익집단에 대해 추상같이 법과 질서를 앞세웠던 데 비해 이번 집단 진료 거부에 대해서는 강경한 발언만 쏟았을 뿐 요구사항을 거의 다 수용했다. 게다가 의사들의 집단행동 도중 핵심 세력으로 등장한 전공의들에게도 선물을 내놔야 했다. 정부는 의료계의 입장을 더 반영할 여지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대화와 설득을 앞세우는 게 마땅했다. 아니라면 원격의료나 영리법인 허용 등의 핵심 쟁점에서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의료계의 양보를 끌어내는 게 바람직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