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폴리 현숙 (9) “하나님 미국인 목사를 주세요” 내 기도에 응답
입력 2014-03-18 02:21
2000년 에릭 폴리 목사와 결혼했는데, 많은 사람이 우리 부부의 만남을 궁금해한다. 그것은 기도의 응답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비기독교인과 두 번째 결혼 후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적인 패션 사업가가 되어 세상의 부와 영화를 누렸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다 건강을 잃으면서 차례로 사업체, 두 개의 집, 결혼 등 모든 것을 잃게 되었고 결국 나는 아이들과 세 든 아파트에 남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으니 세상이 헛되고 헛되었다. 그리고 대학생 때 서원했던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기도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새벽기도를 가려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미국은 13세 이하 어린이들을 보호자 없이 집에 두면 정부에서 아이들을 빼앗아간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남겨진 아이들까지도 나에게 맡겨라. 난 전능하신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의 발목을 하나씩 붙잡고 지켜달라고 절실히 기도했다. “이 아이들이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남들은 나를 뭐라고 손가락질할까?” 등 별의별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인생을 살기로 했다.
자존심 때문에 나의 이혼 사실을 어머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 모든 슬픔, 외로움, 고통을 하나님과 기도로 해결했다. 아침에는 새벽기도, 낮에는 손바닥만한 옷장에 들어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 시절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새벽기도를 가는 차 안에서 15분 동안 핸들을 부여잡고 미친 듯 “주여!”를 외쳤다. 교회에 도착하면 목이 다 쉬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찬양을 불렀다. 세상적으로 보면 인생의 패배자였지만 나는 누구도 줄 수 없는 기쁨 속에 있었다.
주위에서 재혼을 권유했다. “얘, 미국사람들은 남의 애를 너무 잘 키워놓는대”라는 지인의 소리에 귀가 쫑긋했다. 어려서부터 미군과 연애하는 한국 여성들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절대로 외국인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나의 교만함을 다 무너뜨려 버리셨다. 배우자 기도를 시작했다. “미국인 목사를 주세요. 아니면 선교사.” 그런데 결혼을 두 번이나 한 내가 너무 주제를 모르는 것 같아 “하나님, 그것도 안 되면 장로님이라도 주세요. 그럼 평생을 하나님께 자원봉사할게요. 당신을 섬길 수 있는 단 한번의 마지막 기회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왕 기도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 잘생긴 사람, 키는 180㎝, 이전 배우자가 악해서 헤어진 사람 등 구체적인 조건을 달았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2개월 후 나의 기도는 100% 응답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폴리 목사를 만났다. 미국사회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를 만난 것은 ‘기적의 하나님’의 증거였다. 우리 부부를 만나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한다. 13년간 부부로 살았지만 다른 부부들의 50년만큼 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매 순간 하나님을 부부의 중심이 되도록 모셨기 때문이다. 2004년 사랑의교회에서 “저는 한국에 큰 돈을 빚졌어요”라고 잘못 통역한 적이 있는데, 그는 설교 때마다 “전 한국에 빚이 있습니다. 바로 내 아내 때문이에요. 겉만 미국인이지 제 속은 한국인이에요. 보신탕, 뻔데기 등 다 먹어요”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나의 결혼을 통해 한 명의 미국인을 한국인으로 만드셨다. 그는 한국과 하나님을 미치도록 사랑한다. 하나님이 한국 기독교를 위해 어떻게 폴리 목사를 사용할지를 기대하며.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