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착한 우주선’ 시선 사로잡는 곡선의 공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3월 21일 개관
입력 2014-03-18 02:32
오는 21일 지금까지 한국에서 보지 못한 독특하고 희한한 건물을 만나게 된다. 2009년 공사에 들어간 후 4840억원을 들여 5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는 세계 최대 규모(연면적 8만6574㎡, 지하 3층·지상 4층, 높이 29m)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다. 무턱대고 갔다가는 곡선형 건축물 안에서 길을 잃기 쉽고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DDP를 효과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다섯 가지 포인트를 소개한다.
① 불시착한 우주선 속으로 들어가다= 서울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2·4·5호선)에 내려 1번 출구로 나가면 곧바로 DDP와 맞닥뜨리게 된다. 처음 가보는 사람들은 서울 도심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외관에 압도당할 수밖에. 외관은 각기 다른 평면을 가진 4만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이뤄져 있다. 외관 전체 면적은 3만3228㎡로 일반 축구장(90m×120m)의 3.1배에 달한다.
단 한 장도 같은 것이 없는 외장패널은 삼성물산이 세계 최초로 자체 개발한 공법으로 하나하나 만들었다. 곡선패널은 추후 개보수를 위해 저마다 고유번호를 지니고 있다. 외관 곳곳을 둘러본 후 전시관 입장은 지붕 위에 깔린 잔디마당을 통하는 것이 좋다. 출입문은 총 42개가 있지만 DDP의 전체 윤곽과 주변 경관을 동시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② 간송의 문화재를 디자인 공간에서 만나다= 다양한 기획전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디자인박물관의 ‘간송문화(澗松文華)’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일제 강점기 해외로 유출되려는 문화유산을 재산을 털어 모은 것 가운데 국보와 보물 등 59점이 나왔다. 1년에 봄과 가을, 딱 두 번 전시를 열어온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이 외부 나들이에 나선 것은 1938년 미술관 설립 이후 76년 만에 처음이다.
한글의 창제원리를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은 한국 디자인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 후기 화가 신윤복(1758∼?)의 풍속화 30점이 수록된 ‘혜원전신첩’(국보 135호)도 볼만하다. ‘월하정인(月下情人)’ ‘단오풍정(端午風情)’ 등 작품을 통해 당시 풍속과 패션 및 가구를 살펴볼 수 있다. 인기가 높은 혜원의 ‘미인도’는 하반기 전시에 나온다.
③ 스포츠도 디자인이다= DDP는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열린 고교야구대회는 한때 인기절정이었다. 한국 스포츠 역사를 디자인으로 이어가는 ‘스포츠 디자인: 모두를 위한 스포츠 그리고 디자인’이 디자인전시관에 마련됐다. 각종 경기에 얽힌 아스라한 추억을 되새기면서 스포츠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 디자인을 조망하는 전시다.
스케이트선수 이상화의 아트북, 수영선수 박태환의 3D 애니메이션, 야구선수 박찬호의 글러브, 축구선수 황선홍의 축구화 등이 전시된다.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유명한 만화가 이현세가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당시 최다 홈런을 기록한 김태균 선수를 주제로 제작한 일러스트와 영상물을 선보인다. 영국 런던 디자인뮤지엄의 ‘스컬보트’ ‘모노스키’도 출품됐다.
④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작품을 동시에 보다= DDP 건축가 하디드와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엔조 마리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하디드는 ‘360도’라는 타이틀로, 마리는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디자인놀이터와 국제회의장 등에 작품을 내놓았다. 건축과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왜 필요한지 살펴본다.
하디드는 스푼에서부터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와 신발, 보석, 모바일아트 등을 선보인다. ‘디자이너들이 존경하는 디자이너’로 꼽히는 마리는 320점을 내놓았다. 불필요한 요소를 최대한 제거해 나가면서 이미지를 하나의 심볼(상징물)로 만들어낸 ‘사과 No.1’, 어린이 교육을 위한 퍼즐인 ‘16 동물들’이 눈길을 끈다.
⑤ 물결치는 디자인 올레길을 걷다= 층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각의 공간이 연결돼 있고, 공간과 공간 사이에는 디자인둘레길이 놓여 있다. 천장에서부터 물결치듯 빙 돌아가는 조명을 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괜찮다. 빠르게 달리는 지하철 이미지처럼 비스듬하게 디자인된 출입문과 골뱅이처럼 꼬불꼬불 만들어진 조형계단도 이색적이다.
이노디자인이 3층 둘레길 쉼터에 조성한 ‘뮤지엄 라운지’는 만남의 장소다. 휴식을 취하면서 담소를 나눈 뒤 이곳과 관련된 각종 유물을 음미하면서 DDP투어를 마무리하는 것은 어떨까. 한양도성의 물을 성 밖으로 내보냈던 이간수문(二間水門), 조선시대 왕의 호위를 맡았던 하도감(下都監) 터, 동대문운동장 철거 때 남긴 축구장 조명탑 등이 역사 속 여행으로 안내한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