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에게 피해자 개인정보 고스란히 알려준 법원
입력 2014-03-17 16:36
[쿠키 사회] 법원이 성폭력 가해자에게 전달되는 판결문에 피해 당사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여과 없이 기재해 말썽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형사 배상명령 신청 규정을 그대로 따랐다는 입장이지만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법률개정 등 입법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A씨(25·여)가 생면부지의 남자 B씨(30)에게 성폭력을 당한 것은 2012년 8월 6일 새벽.
정신을 차린 A씨는 B씨를 강간혐의로 고소하고 재판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에 대한 형사 배상명령을 신청했다. 배상명령이란 형사사건 피해자가 재판과정에서 민사적 손해배상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A씨는 B씨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합의한 뒤 일을 매듭지기로 했다. 하지만 법원의 실수 아닌 실수로 성폭력의 고통을 되새겨야 했다.
법원이 B씨의 1심 판결문에 A씨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까지 고스란히 적어 보낸 것이다.
B씨는 상호 합의했다는 이유로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공소기각 결정을 받았다. 이와 함께 형사 배상명령 신청은 각하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B씨는 별도의 절도죄가 드러나 징역 8월을 선고받은 상황이었다.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지난해 10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배상명령 신청인란에 A씨의 인적사항을 상세히 기재했다. 주민번호는 물론 주소까지 성폭력 가해자에게 그대로 알려준 법원의 행정조치 탓에 A씨는 곧바로 앙갚음을 당할지 모른다는 고민에 빠졌다.
밤잠을 못 이루던 A씨는 결국 시민단체인 여성의 전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의 도움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 등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광주지법에 냈다.
법원은 A씨 측에 소송 답변서를 통해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소송촉진법), 대법원 예규 등을 근거로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배상명령 신청인을 명확히 밝히려면 인적사항을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상명령 신청이 각하된 시점에서 기계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인 신청인의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까지 성폭력 가해자에게 알려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는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거나 이에 관여하는 공무원 등은 피해자의 주소, 성명, 나이 등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국가배상 소송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법률 조항 가운데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주목된다.
공익소송 활동을 위해 A씨 소송을 대리한 민변 광주·전남 지부는 소송 촉진법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을 재판부에 신청하기로 했다.
민변 소속 이성숙 변호사는 “여의치 않을 경우 헌법소원도 제기할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관련 법률이 고쳐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광주=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