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윗선 직접수사 여부 김 사장 ‘입’에 달렸다
입력 2014-03-17 03:31
검찰이 국가정보원 김모 조정관을 체포한 것은 간첩사건 증거 위조에 국정원 본부 차원의 개입 정황이 상당 부분 파악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의 핵심 인물로 꼽혀 온 김 조정관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국정원 대공수사국 지휘라인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말 맞추기 우려…전격 체포=검찰이 김 조정관을 체포한 것은 지난 15일 오후 7시 무렵이다. 그 직전 국정원 협조자 김모(61)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검찰은 체포영장을 미리 받아놓았다가 김 조정관이 자진 출석한 직후 영장을 집행했다. 체포 사실은 국정원 측에도 통보됐다.
김 조정관은 여러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줄곧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에게 변호인 자료를 반박할 만한 자료 입수를 문의했을 뿐 위조를 사주하지 않았으며 위조 사실도 몰랐다는 주장이었다.
일명 ‘김 사장’으로 불린 김 조정관은 주로 중국 동북3성 지역에서 신분을 감추고 대북공작 활동과 첩보 수집을 하는 ‘블랙요원’이다. 김씨 역시 그가 오래 전부터 관리하던 정보원이었다. 검찰은 두 사람 간의 전화통화 기록과 자금 거래 내역 등을 추적해 김 사장이 ‘위조 문서라도 구해오면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식의 지시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이 체포라는 강수를 둔 것은 말 맞추기 등 증거 인멸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국정원 측과 김 조정관을 ‘격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다.
◇‘윗선’ 수사 김 사장 입에 달렸다=외부 협조자에 이어 국정원 본부 직원까지 체포한 것은 검찰 수사가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 여부를 확인하는 단계까지 진행됐다는 점을 의미한다. 김 조정관은 김씨가 조작한 싼허변방검사참 문건 외에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 나머지 중국 서류 2건의 위조에도 관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유우성씨 출·입경 기록’ 역시 중국 내 또 다른 협조자가 건넨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협조자 역시 김 조정관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미 선양영사관 이인철 영사가 문서 3건의 유통 과정에 모두 관여한 사실을 확인하고 정식 입건한 상태다. 이 영사는 지난 13일 검찰에 나와 “국정원 본부의 거듭된 지시로 허위 영사확인서를 써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부 직원들이 대거 증거 위조 과정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되면서 대공수사팀장-수사국장으로 이어지는 ‘윗선’을 겨냥한 수사도 빨라지고 있다. 국정원 수뇌부가 명시적으로 증거 위조를 지시하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보고를 받았거나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김 조정관을 비롯해 검찰 조사를 받은 국정원 직원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결국 김 조정관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그 지휘라인에 대한 수사 확대 여부와 범위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검찰이 김 조정관을 체포한 데는 진술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 전략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