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사업 40년(상)] M-16 소총 베끼는 수준서 재래식 무기 수출국 5위로
입력 2014-03-17 02:24
올해로 ‘율곡사업’이 시작된 지 40년이 됐다. 1974년 3월 15일 시작된 율곡사업은 총 25조8000억원이 투자된 초대형 국가사업이었다. 1993년 김영삼정부 때 율곡비리 감사와 96년 불거진 ‘린다 김’ 사건 등으로 율곡사업은 비리로 얼룩졌다는 오명(汚名)을 남겼다. 그로 인해 소총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던 시기에 자주국방의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방위산업도 이윤만 추구하는 ‘검은 산업’이라는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율곡사업이 오늘날 한국 방위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데 기폭제가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율곡사업을 시작할 당시 청와대 경제2수석비서관이었던 오원철(86)씨는 “우리 국군은 율곡계획을 추진함으로써 비로소 군수체제의 자주화를 이루게 되었고 나아가 주권을 갖는 국군 즉 국방 자주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은 1974년도”라고 말했다. 율곡사업 4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현주소와 발전 방향을 짚어본다.
(상)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방위산업
지난해 우리나라의 방위산업 수출액은 3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출액은 2006년도 2억5000만 달러를 기록한 뒤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추세라면 5년 뒤에는 수출액이 100억 달러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방위산업이 우리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 방위산업 잠재성이 큰 나라=최근 국제사회는 한국 방위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국제적인 무기거래 전문 연구기관인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는 한국을 개발선진국 가운데 무기 생산과 수출 가능성이 상당히 큰 나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우리나라가 세계 5위 재래식 무기 수출국이 됐다고 밝혔다.
2012년 9월 CRS가 발표한 ‘2004∼2011년 개발도상국 대상 재래식 무기 판매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개도국을 비롯한 외국과 판매 계약한 재래식 무기류는 무기와 실탄, 지원, 훈련 등을 포함해 15억 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나라는 663억 달러 수출로 부동의 1위를 지킨 미국과 러시아(48억 달러) 프랑스(44억 달러) 중국(21억 달러)뿐이었다. CRS는 전통적인 무기수출국인 유럽이 재정위기 여파 등으로 주춤하는 사이 한국이 개도국 무기시장에서 주요 수출국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재래식 무기 도입은 국산화 등으로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넷판은 한국이 방위산업 강국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아직까지 한국의 무기 수출이 동남아에 집중돼 있지만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무기수출국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우리 방위산업 어디까지 왔나=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비장한 각오로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사항이라고 판단, 시작된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초창기에는 미국의 M-16 소총을 베끼는 수준이었다. 그 후 40여년이 지난 2014년 현재 한국 방위산업은 소구경 탄약에서부터 155㎜ 곡사포, K1A1 전차, 130㎜ 다연장포, K-9 자주포, 사거리가 1500㎞에 달하는 크루즈 미사일, 초음속 돌파가 가능한 고등훈련기 T-50과 잠수함, 군수지원함 등 기술 및 자본집약적인 첨단 무기체계에 이르기까지 우리 군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무기를 자체 조달할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수출하고 있다.
현재 방산업체로 등록된 회사만 96개에 달한다.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K-9 자주포를 개발·생산하는 삼성테크윈, 고등훈련기 T-50을 생산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천궁 신궁 해성 등 첨단 정밀무기를 개발·수출하는 LIG넥스원과 두산DST는 2013년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가 선정한 글로벌 100대 방산기업에 포함됐다.
최근에는 전문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이오시스템은 주야간 관측장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로스트왁스는 항공기용 블레이드를 자체 생산하는 등 소재품목들의 국산화를 이끌고 있다. 방산업체로 지정된 중소업체뿐만 아니라 협력업체로 방위산업에 참여하는 일반 중소업체도 4000여개에 이른다. 한국방위산업학회 채우석 회장은 16일 “우리 방산업체들은 기본 병기를 생산하는 단계에서 첨단 무기를 독자 개발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한국 방산업체들의 기술 수준은 분야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선진국 대비 80% 수준으로 스웨덴과 함께 세계 10위에 올라 있다. 제품군별로 보면 화포는 90% 수준으로 가장 높은 경쟁력을 지니고 있으며 전차 등 기동전투체계도 88%로 높은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을 가진 나라답게 함정 분야의 경쟁력 역시 86%로 높은 수준이다. 중요 센서 등 광학 부문도 80%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항공 및 감시정찰 분야는 76∼78% 수준에 그쳤다.
◇방위산업의 파급효과=방위산업은 우리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를 원활하게 공급하는 것이 일차적인 임무지만 산업 자체로서 갖는 경제적인 파급효과도 크다. 군에서 개발된 기술 가운데 민수산업 기술로 전환된 것이 적지 않고, T-50 고등훈련기 1대의 수출효과는 중형 자동차 1150여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 게다가 방위산업은 국가안보와 첨단 기술이 접목되는 과학기반사업이기도 하다.
한국국방연구원 심경욱 박사는 “방위산업은 새로운 소재와 정보기술(IT), 고도의 지능화된 첨단 기술이 융합된 분야로 국가산업을 선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자동화가 쉽지 않은 특성상 고용창출 효과가 상당히 높다. 전체 제조업 생산에서 방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기준 0.62%지만 같은 기간 방위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은 3만1700여명 수준으로 제조업 인력의 0.92%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방산업체 종사자들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6.3%씩 늘고 있어 향후 고용창출 효과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