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共 ‘러’ 귀속투표 강행] 결과 상관없이 친서방-친러시아 세력간 정면충돌 불가피

입력 2014-03-17 03:31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이 16일(현지시간) 중앙정부와 결별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예상대로 러시아와 합치겠다는 결과가 나오면 양측은 정면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크림공화국은 우크라이나에 남더라도 자치권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인 만큼 중앙정부와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진행됐나=주민투표는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3시)부터 12시간 동안 크림반도 27개 지역구 1205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우크라이나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크림반도에 있지만 행정구역상 크림공화국에 속하지 않은 남부 세바스토폴에서도 별도 주민투표가 치러졌다.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한 이 도시는 특별시로 분류된다.

크림공화국 유권자는 전체 주민 약 200만명 중 18세 이상인 150만명 정도다. 192개 투표소가 차려진 세바스토폴에서는 약 30만명이 유권자로 등록했다.

투표소와 주요 관청 인근에는 크림공화국 경찰과 보안요원 외에도 자경단원 1만명가량이 배치됐다. 투표 진행 상황은 23개국에서 온 참관단 180여명이 감시했다.

투표용지에는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크림 타타르어 등 3개 언어로 두 가지 선택지가 제시됐다. 크림공화국이 러시아연방에 합류하는 방안과 우크라이나의 일부로 남되 1992년 크림공화국 헌법을 회복하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후자는 공화국 자치권이 축소되기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겠다는 의미다. 즉 어느 쪽이든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는 지금 상태로 남진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러시아 귀속 결론 유력=투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다소 들뜬 분위기로 진행됐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장에 나오면서 투표율은 시간대별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2시엔 투표울이 44%를 기록했고, 30분 뒤엔 50%에 이르렀다. 2012년 총선 때보다 2~3배 높은 수치로 크림 정부는 최종 투표율이 80%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크림공화국은 주민 60%가 러시아계다. 이들은 친서방 세력이 장악한 과도정부에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투표 이전부터 ‘결과는 보나마나’라는 식의 얘기가 나온 건 이 때문이다.

현지 여론조사기관 스레스는 유권자 90% 이상이 러시아 귀속에 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CNN방송은 미국 정부 내에서도 비슷한 예상이 나온다고 전했다.

러시아 귀속안이 주민투표에서 통과되면 크림공화국은 본격적인 합병 절차에 착수하게 된다. 중앙정부는 주민투표를 법으로 금지한 상태이기 때문에 크림공화국이 이를 강행하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크림 의회는 모든 귀속 절차를 이달 안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크림 자치정부는 현지에 주둔한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선거 이후 항복하지 않으면 불법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크림 군 당국이 정부군을 철수시키려는 과정에서 무력을 사용할 경우 교전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러시아가 크림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한다면 사태는 확전될 수 있다.

투표 이후 국면 전환의 열쇠는 러시아가 쥐게 된다. 러시아가 크림공화국의 합병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공화국과 중앙정부 간 화해를 중재한다면 사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서 그런 조짐이나 가능성은 포착되지 않는다. 러시아 하원은 21일 크림공화국 병합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우크라에 남는다면=크림공화국이 우크라이나에 남기로 하는 경우에는 20년 전 폐지된 대통령제를 복구하고 중앙정부가 축소한 자치공화국 권한을 다시 확대하는 등의 후속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크림 의회는 우크라이나 편입 이듬해인 92년 독립한다는 내용의 개헌안을 채택했지만 중앙정부의 반대로 자치권을 부여받는 선에서 타협했다. 이 자치권은 94년 취임한 공화국 대통령 율리야 메쉬코프가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과 러시아와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대폭 축소됐다. 메쉬코프는 대통령 권한의 상당 부분을 박탈당했고, 중앙정부는 크림 자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대통령직을 폐지했다.

96년에는 공화국의 자치권을 제한했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선택지로 제시된 92년 체제는 우크라이나에 남되 그동안 상실한 자치권을 회복해 ‘나라 안의 나라’로 인정받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