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한국서 희귀난치병 환자 부모로 산다는 것… 치료법 없어 절망의 나날 ‘죽어야 끝나는 고통’
입력 2014-03-17 02:12
“듣도 보도 못한 병이었어요.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없고 마땅한 치료법도 없고…. 우리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서 정부도 지원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네요.”
싱글맘 이민영(가명·45)씨는 큰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큰아들은 극도의 고통에 몸부림치다 숨을 거뒀다.
1994년 7살이던 큰아이의 말이 갑자기 어눌해졌다. 이어서 바로 앞에 있는 물체를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 나 눈이 안 보여.”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이씨는 아들을 업고 병원을 찾아다녔다. 서울의 대형병원은 다 돌았다. 어디서도 명확한 진단을 내려주지 않았다. 한 병원에서 사시(斜視) 진단을 받고 교정 수술을 했으나 아이의 증상은 날로 심해졌다.
우여곡절을 겪고 반년 만에 서울대병원에서 확진을 받았다. 부신백질이영양증. 생전 들어보지 못한 병명이었다. 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몸의 기능이 하나씩 멈추는 병이라고 했다. 의사는 “치료법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청력과 시력, 언어 능력까지 모두 잃은 큰아들은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동물 울음소리 같은 신음만 내뱉다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칠흑 같은 암흑과 정적 속에서 외롭게 죽어갔을 아들을 생각하며 이씨는 매일 밤 울부짖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큰아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4살 둘째아들에게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다행히 둘째는 병의 진행을 늦춘다는 ‘로렌조 오일’을 먹으며 힘겹게 연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다행이라 여겼던 게 실은 불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16일 털어놨다. 그는 18년째 둘째아들의 병 수발을 들고 있다. 합병증으로 뇌에 이상이 생긴 둘째는 공격적 성향이 심해 수시로 집안 물건을 던지고 이씨를 폭행한다. 결벽증까지 찾아와 대소변을 보면 몇 시간이고 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습관도 생겼다. 이씨는 “내 인생은 지옥”이라고 했다.
희귀난치병 환자 부모들은 끝이 안 보이는 고통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호전 가능성이 없으니 희망도 없다. 치료법마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연명 치료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죽어야 끝나는 고통’을 그들은 겪고 있다.
국내에서 희귀난치성 질병을 앓는 사람 가운데 중증 환자는 2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평범한 서민 가정에 누군가 중증 희귀난치병에 걸리면 대부분 2∼3년 안에 가정이 붕괴된다. 대부분 사회적·경제적·정신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들을 돕지 않는다. 아니 도울 생각도 못 하고 있다. 그런 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일보는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이현희 박사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지난한 삶과 고통을 헤아려보고 정부 지원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짚어봤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