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3D 프린터
입력 2014-03-17 02:34
화장품 가게에서 화장품 외에 다른 걸 판다면 무얼 팔아야 할까? 만약 ‘젊음’을 판다면 어떨까? 화장품 대신 청춘을 상징하는 스토리 혹은 이미지를 판다면 판매 목록에 각종 건강관리서비스나 의약품을 올릴 수 있다. 조금 더 나가서 인공장기 매매와 수술 서비스 연결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 3D 프린터로 만든 인공장기라면 더 극적일 것이다. 개인의 소비가 단순한 공산품 구매에서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미 경계와 영역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경제·산업계 구석구석에서 틀과 꼴이 바뀌고 있다. 인터넷과 굴뚝산업, 서비스업이 이리 섞이고 저리 엮이고 있다. 그리고 모든 변화의 중심에 ‘1인 시대’가 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기본 축으로 발전했다. 얼마나 더 많이, 더 빨리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느냐가 최대 미덕이었다. 대량 생산된 제품은 소비자에게 대량으로 뿌려졌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시장은 ‘1인 생산, 1인 소비’라는 새로운 흐름에 몸을 맡겼다. 특히 3D 프린터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달콤하다. 집, 자동차, 가전제품 등 모든 소비의 대상은 개인 맞춤형으로 대체될 수 있다. 3D 프린터는 손에 잡히는 물건을 프린트한다. 그동안 종이라는 2차원 평면 위에 그림·도형·텍스트를 인쇄하던 프린터가 입체적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원료로 무엇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금속제품, 나무제품 등을 다양하게 뽑아낼 수 있다.
3D 프린터는 ‘요술 지팡이’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플라스틱을 원료로 했지만 이젠 금속, 나무 등을 원료로 써서 가구, 탱크 등을 만들어내는 단계까지 왔다. 최근에는 임플란트, 의족, 보청기 등 의료 영역으로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세포나 단백질 등을 원료로 사용하면 각 개인의 면역체계에 딱 들어맞는 인공장기를 만들 수 있다.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팹랩(Fab Lab·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설비를 빌려주는 공장)에서 3D 프린터로 나만의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된다. 3D 프린터가 가정에 보급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일치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내수공업까지 출현할 수 있다.
모두가 기업가이고, 모두가 소비자인 시대. 새로운 산업혁명의 기운은 진해지고 있다. 정체에 빠진 우리 경제계에 남은 시간도 얼마 없어 보인다. 기회를 잡으면 ‘퀀텀 점프’(Quantum Jump·대도약)를 이룰 수 있다. 뒤처지면 국물도 없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