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어떤 예의

입력 2014-03-17 02:40


우리 집 고양이 니케와 동물병원 앞에 서 있는데 지나던 유치원생 몇이 ‘와아, 고양이다’ 하고는 다가들어 조잘댄다. 아이 귀여워! 아줌마네 고양이예요? 여자예요, 남자예요? 이름이 뭐예요? 아, 고양이 기르고 싶다! 나도. 나도.

뭐든 스스럼없이 묻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바람직하다. 얘, 물어요? 고양이는 뭐 먹어요? 고양이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려줄 수 있는 기회라서 이 아줌마는 이때다 싶다. 고양이는 짠 거, 그런 아무거나 먹으면 병이 나요.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인지 얼른 알아듣진 못하는 것 같다. 아줌마는 왜 여기 있어요? 동물병원 앞인데 바깥에 있으니 아이들은 그 점도 궁금한 모양이다. “동생고양이가 예방주사 맞으러 들어가서 기다리는 거예요.” 여덟 개 눈동자가 부러움으로 초롱초롱 빛난다. 동생고양이도 있어요? 아줌마 좋겠다!

동물이라면 무조건 무섭다며 피하는 애들도 있는데 명랑한 이 꼬마들은 다르다. 우리 니케를 귀엽다며 만져보고 싶다 하니 여간 기특하질 않다. 아줌마 입매가 흐뭇하게 이만큼 벌어지려는 찰나, 그만 만다. 뒤따르던 엄마들이 큰일이나 난 듯 달려와 각각 아이들을 순식간에 낚아채서다. “어머 얘들 좀 봐! 어르신을 귀찮게 하면 안 된다고 했지. 어르신께 인사드리고, 고양이한테 안녕하고 얼른 가자. 어르신 죄송합니다.”

30, 40대쯤인 엄마들이 깍듯하다. 왜 죄송한지, 뭘 귀찮게 했다는 건지 이 ‘어르신’은 도무지 황당하다. 어르신 어르신 하며 돌연 구정물을 끼얹는 심보가 뭐냐. 전생에 원수라도 졌느냐.

(어르신-어르신네 「명사」 / 「1」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어른’보다 높여 이르는 느낌을 준다. ≒어르신「1」. / 「2」아버지와 벗이 되는 어른이나 그 이상 되는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 ≒어르신「2」.)

사전풀이와 상관없이 나이만큼 존경도 받을 수 있는 인품을 어른 혹은 어르신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알아 왔다. 노인취급 받았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시중에서 툭하면 남발하는 ‘어르신’이란 말이 영 불편하던 터다. 방송 같은 데를 보면 술 취해 길거리에 고꾸라져 있는 인물에게도 ‘어르신’ 운운하며 마이크를 들이대더라. 아무렇게나 함부로 살았대도 살아낸 세월자체에 대한 존중이라면 모르겠다.

훌륭한 인격을 갖춘 진짜 어르신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 노릇인가. 졸지에 어르신이 된 자의,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이 애매모호한 기분이라니.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