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흔적이 있습니까

입력 2014-03-17 02:07


갈라디아서 6장 11∼18절

주후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소집된 니케아 종교회의 때 모인 지도자들의 수는 30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회의에 참석한 이들 중에 몸이 성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로마 박해 시대에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문으로 눈이 뽑히고, 팔다리가 잘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고난의 시대에 살지는 않지만 우리의 무릎과 눈에 기도의 흔적, 눈물의 흔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도 온 몸에 고난 당하셨던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아마 우리들도 이러한 고난의 흔적을 가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흔적’, 또는 ‘스티그마’는 여러 의미로 쓰인 용어였습니다. 가축들에게 찍어 그 주인의 소유권을 표시할 때, 또는 노예나 군인에게 찍어 누구의 소유인지 나타내는 부끄러운 흔적이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했습니다(17절). 이는 고대 낙인의 개념을 잘 이해한 가운데 자신이 철저히 예수님께 속한 종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 흔적을 가진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 오직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14절) 세상적으로 볼 때 십자가는 연약함과 불행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삶 속에서는 대단한 자부심과 자랑거리였음을 고린도교회를 향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세상적인 자랑거리가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참 진리 되신 생명의 주님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그 모든 자랑거리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그것들을 분토와 같이 여겼습니다. 십자가야말로 진정 삶의 최우선순위의 자랑거리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포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신 위대하신 하나님 사랑의 확증입니다(롬5:6∼8).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그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죄와 저주와 질병과 사망에서 속량해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의 기쁨이 있고, 이 땅에서 받는 고난과 고통의 삶을 감당할 능력 또한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영원한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한 삶과 신령한 은혜의 복을 동시에 누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흔적’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세상이 가져다주는 흔적들이 때로는 기쁨도 되고 슬픔도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흔적을 다루고 처리하므로 언제나 자유와 평강을 누리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은 것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곧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일로 인해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과 채찍질 당함, 그리고 가시면류관과 창에 찔림이 바로 나를 위한 고난이었음을 되돌아봅시다. 주님께서 남기신 그 사랑의 흔적이 나에게도 발견되는 은혜의 사순절이 되길 소망합니다.

김병진 하늘꿈선두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