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기쁨-Helper’s High] “직원들에게 사업체 물려주고 봉사하며 삽니다”
입력 2014-03-17 02:25
굿윌스토어 송파점 한정수 자원봉사실장
평생을 바쳐 일궈온 사업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직원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평소에 쓰던 노트북 한 대만 딱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자원봉사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 송파구 마천로 밀알복지재단 굿윌스토어에서 자원봉사실장으로 일하는 한정수(71)씨의 이야기다. 지난 13일 굿윌스토어 송파점에서 그를 만났다.
굿윌스토어는 다양한 물건을 기증받아 판매하는 업체로 직원 대부분이 장애인이다. 서울과 부산 창원 수원 등 전국에 9개의 매장이 있다. 서울 송파점과 도봉점 2곳을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버젓한 사업체가 있었는데 왜 은퇴해서 보수 한푼 못 받는 자원봉사를 하십니까.
“을지로에 있을 때(그는 서울 을지로에서 건축자재 대리점을 23년 동안 운영해 왔다)부터 은퇴하면 내가 뭘 해야 할까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순수하게 자원봉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월급쟁이도 아니고, 자기 사업 하는 분들은 보통 은퇴를 생각 안 하지 않습니까.
“생각의 차이겠죠. 신앙이 없었다면 뭐 자기 직업 가지고 노년을 나름대로 즐기는 것도 보람 있겠지만 최소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잖아요. 지금까지 평생 내 밥벌이를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축복을 받았는데, 최소한 내가 건강하고 정신 맑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제가 명색이 교회(열린비전교회) 장로여서 성도들 앞에 간증하고 말씀 전하는데 내 삶이 말씀과 동떨어져 있다면 면목 없고 아무런 영향력도 없죠.”
-많이 벌어놓으셨나 보네요.
“허허. 제가 은퇴할 때 가진 재산이 서울의 아파트 딱 한 채였습니다. 그거 하나면 남은 생은 먹고살고도 남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제분들은 어떡합니까. 좀 챙겨주셔야죠.
“아니, 그건 본인들의 삶이죠. 애들까지 내가 어떻게 책임을 져요. 교육시키고 결혼했으면 나머지는 본인들이 알아서 개척해나가야지.”
-직원들은 대박이었네요.
“(웃음) 그분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제가 모르죠. 석 달 동안 인수인계하고, 2년 정도는 매달 한 번 찾아가 직원 예배를 인도하고 자문도 해주고 했지만 이젠 아예 근처에도 안 갑니다. 사업체가 크냐 작냐를 떠나 아까 말씀드렸듯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가짐의 문제였어요. 요즘 한국교회에 세습 얘기가 나올 때면 저는 아쉬움이 큽니다. 새벽기도를 드릴 때면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의 그런 약한 부분을 다스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선 어떤 일을 하십니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여기 나와 자원봉사자들 교육도 하고 현장 배치하고 그분들이 잘하시도록 돕습니다. 굿윌스토어 송파점이 자리를 잡는데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아주 컸습니다. 이분들이 오실 때 꼭 기증품을 가지고 오시고, 가실 때에는 여기서 물건도 사서 가시고 주변에 소문도 내주시거든요. 저도 여기서 자원봉사하는 삶이 어찌나 활기찬지 몰라요.”
-저는 오늘 아침 출근할 때도 피곤했는데, 돈 한푼 안 받고 봉사하는 게 활기찬가요.
“돈을 받고 일하면 피곤하고 힘들어요. 허허. 저도 사업할 때는 월말이 어찌나 빨리 돌아오는지, 직원들 월급 주고 거래처 결제해줄 걱정에 늘 변비가 있었어요. 봉사를 하면 그렇지 않아요.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니까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여기 오면 젊은 직원들과 얘기도 할 수 있고. 여기 장애를 가진 직원들은 얼마나 순수한지 몰라요. 있는 그대로 자기를 표현하고 사람을 받아들이니까 참 순수해요. 굉장히 즐겁고 보람도 많이 느껴요.”
굿윌스토어 송파점에는 54명의 장애직원과 13명의 일반직원이 일하고 있다. 일반직원의 급료는 서울시가 지원하고, 장애직원의 급료는 매장 운영 수익으로 지급한다. 지난 연말에는 직원들에게 50%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굿윌스토어 기획팀 최회성씨는 “한 실장님 덕분에 송파점이 빠른 시간 안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며 “지난해 개장한 서울 도봉점은 아직 한 실장님처럼 자원봉사자들을 돌봐줄 분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하셨죠?
“다 은퇴했죠. 다들 나를 부러워해요. 그런데 말로만 그러지 같이 하자고 하면 막상 동참을 안 해요.”
-굿윌스토어에서 자원봉사를 하면 뭐가 좋습니까.
“굿윌스토어의 가장 큰 목적은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장애인이 있으면 돌볼 식구도 필요합니다. 장애인이 일을 하게 되면 그런 부담이 줄어드니까 2배의 효과가 있어요. 장애인 직원들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재활활동도 합니다. 처음 면접 때에는 소리 지르고 앉지도 못했던 직원이 지금은 아주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무척 좋아하시죠. 굿윌스토어는 미국에서 110년 전에 시작된 기업인데, 그 노하우를 전수받아 운영합니다. 매년 직원들이 미국에 가서 연수도 받고, 우리끼리도 매년 연수를 합니다.”
미국 보스턴의 에드거 햄즈 목사가 창업한 굿윌스토어는 2012년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에 활기를 불어넣는 기업’이 됐다. 캐나다와 남미에서도 활동하며 전 세계에 10만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직원들이 연수를 가면 매장은 어떡합니까.
“지난해 2박3일간 전 직원이 제주도로 연수를 갔는데, 직원 부모님들이 오셔서 자원봉사로 매장을 지켜주셨어요. 사흘 만에 김포공항에 도착해 ‘저희 돌아왔습니다’라고 전화를 드렸더니 부모님들께서 그동안 힘드셨을텐데 오히려 ‘이제 해방이 끝났다’고 하시더군요.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학생 때 자원봉사를 해봤는데, 생각만큼 보람을 찾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게 연륜의 차이인데, 젊을 때는 꿈이 크잖아요. 우리 나이쯤 되면 그런 과정을 다 겪어왔고, 나머지 삶을 생각할 때에는 내가 정말 보람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봉사하면 감사하게 됩니다. 저는 여기 와서 젊은 직원들과 대화하는 것도 즐거워요.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용법도 직원들에게 배우죠. 이젠 오히려 제 또래들을 만나면 제가 세대차이를 느낍니다. 하하하.”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