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목사의 시편] 숙의(熟議) 리더십
입력 2014-03-17 02:23
조선에서 왕이 죽으면 묘정배향(廟庭配享)이라 해 왕이 살아있을 때 그를 가장 잘 보필한 신하를 선발, 종묘에 같이 모신다. 이를 배향공신(配享功臣)이라 한다. 세종대왕을 보필한 이들은 황희, 최윤덕, 허조, 신개, 양녕대군, 효령대군 등이다. 이들 중 허조가 배향공신으로 선택된 것은 의외다.
세종 14년(1432년), 여진족의 기병 400명이 압록강변으로 쳐들어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자 세종은 여진족 토벌을 계획한다. 3개월 동안 마흔한 번의 회의와 서른세 차례에 걸친 토론 끝에 토벌을 결정했는데, 최윤덕과 허조는 반대했다. 허조는 모든 과정에서 조목조목 따지며 끝까지 반대했지만, 최윤덕은 임금의 최종결정에 따라 직접 군을 이끌고 여진족을 토벌하는 공을 세웠다. 오죽하면 세종조차도 ‘허조는 고집불통’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세종은 끝까지 허조를 곁에 두고 중용하였다. 허조는 세 번이나 이조판서를 역임했고, 우의정과 좌의정까지 올랐다. 세종대왕의 탁월한 업적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했고 오랫동안 논의해 결정하는 숙의(熟議)의 리더십을 갖췄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목회상담가이며 교회성장전문가인 톰 레이너 박사는 ‘비판적인 성도를 감내하는 일’을 목회자가 직면하는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다. 마치 목회자를 비판, 견제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성도 중에 꼭 있다는 말이다. 담임목회자는 잦은 회의에 시달리곤 한다. 회의 구성원 중 매사에 반대하고 견제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더욱 힘들다. 하지만 리더는 매사 반대를 일삼는 자가 있는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반대파의 의견을 경청해 앞으로 일어날 문제점을 방지하고 더 나아가 숙의의 과정을 거쳐 반대파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이야말로 상책이 아닐 수 없다.
사도 바울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4)고 했다. 듣기 싫은 말도 경청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야만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 그러므로 담임목회자는 회의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최근 한국교회 곳곳에서 들리는 소통의 부재로 인한 갈등은 올바른 회의 진행과 숙의의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위왕(威王)은 나라 전역에 포고령을 내려 “왕 앞에서 대놓고 충고하면 1등상, 글을 올려 왕의 잘못을 바로 잡으면 2등상, 사석에서 왕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 왕의 귀에 들리면 3등상을 준다”고 했다. 그리하자 1년 뒤 위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자는 간신(奸臣)이고, 듣기 싫은 소리만 하는 자는 간관(諫官)이라 한다. 교회를 바로 세우기 원한다면 일단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봄이 어떤가.
<거룩한빛광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