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4) 한여름 밤, 사막에 떨어진 기적
입력 2014-03-15 02:23
저기 저 지평선 끝, 소실점까지 온통 황무지뿐이다. 드디어 사막에 왔다. 태어나 처음 만나는 황홀한 감정이다. 사막이라 마을이 없다. 숙소가 걱정이긴 했다. 하지만 ‘젊음이란, 두근거림이 가슴에 차오를 때 대책 없이 도전도 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연자약(泰然自若). 붉게 터지는 석양 속으로 돌진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젊음이라면 그 어떤 것도 도전할 수 있다. 용기 내면 환상도 실재가 될 수 있다 믿었다.
눈을 씀벅이며 바라본 포 코너스(Four corners·미국 4개 주가 한 지점에 모인 곳)를 관통하는 160번 하이웨이의 풍경은 평생 이야기꺼리가 될 만했다. 금세 광야의 밤이 내렸고, 별들이 불을 켜기 시작했다. 탈진한 난 그대로 모래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님, 전 이제 이곳에 텐트 치고 자려고 합니다. 제가 걱정하지 않는 게 다 주님 때문인 거 아시죠?”
자, 이제 텐트를 쳤으니 식사를 해야 한다. 그러데 큰일이다. 신나게 달리다 보니 그만 저녁 챙기는 걸 깜빡했다. 낮 동안 내내 마켓 들러서 음식 챙겨야 한다고 다짐했으면서도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그만큼 매혹적인 사막에 마음을 빼앗겼던 모양이다. 쫄쫄 굶으며 여행하는 안쓰러움을 언젠가 추억담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다음 날을 생각하니 위기감이 엄습해 왔다.
나는 도로로 뛰쳐나갔다. 진심이 만들어내는 기도의 능력을 믿어볼 때였다. 저기 저 멀리서 불빛 하나가 아른거리면서 가까워져 왔다. 나는 폴짝폴짝 손 흔들고 뛰면서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냈다.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한 대의 차가 속력을 줄이며 멈춰 섰고, 뒤에 오던 차들도 추월하지 않고 그대로 열을 지었다. 얼마든지 차선 변경해서 무관심하게 갈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입니다. 오늘 제가 저쪽 사막에 텐트 치고 자려고 합니다. 그런데 미처 먹을 걸 못 챙겼네요. 죄송하지만 혹시 차 안에 음식이 좀 있습니까?”
첫 차의 주인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는 여행 잘하라는 격려와 함께 물과 쿠키를 건넸다. 두 번째 차에선 중년 부부가 음료를 건네주었다. 세 번째 차에선 상황을 미리 간파한 운전자가 음식물 봉지를 통째 건네주었다. 풍성해진 나는 뒤에 선 두 차에는 손을 흔들며 그냥 보내려고 했다. 하나 마지막 차 주인은 내게 쪽지를 건넸다.
“용기가 대단하군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주세요. 근처에 사니깐 도와주러 올게요.”
모두들 밤중에 사막에 홀로 남겨진 나를 걱정해 주었다. 먹을 게 있나 차 구석구석을 뒤지고, 또 행운을 빈다며 격려했다. 그들이 건네준 그야말로 정 넘치는 음식들에 나는 한없이 감사했다. 텐트로 돌아왔다. 위기의 순간 찾아든 기쁨이었다. ‘광야의 은혜가 이런 것이구나.’ 사막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그저 눈에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실은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셨다. 황량한 사막에서조차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텐트 안에서 멋진 만찬을 즐긴 뒤 여유를 찾고 밖으로 나왔다. ‘어? 별똥별이네….’ 로맨틱한 밤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기적이 찾아든 사막이다. 사랑을 묵상하는 밤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