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FTA로 국민들에 혜택 돌아간다더니… 수출국·중간 업자들 ‘배’만 불렸다
입력 2014-03-14 03:01
가격 인하 효과로 우리 국민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던 정부의 설명과 달리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농산물 분야에선 수출국과 중간유통업자들만 이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한·칠레 FTA가 처음 발효된 지 10년이 흘렀지만 정부는 왜곡된 수입 농산물 유통체계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이를 보다 못한 국책 연구기관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서둘러 철퇴를 휘둘러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은 13일 ‘FTA 체결 이후 주요 수입 농산물 유통 실태와 경제주체별 후생효과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FTA 발효 이후 수입량이 급증한 포도 오렌지 쇠고기(갈비) 돼지고기(삼겹살)의 가격 동향과 경제주체별로 얻은 이익을 분석했다.
수입산 포도는 FTA 이전 소매가격이 4259원이었지만 발효 이후엔 오히려 ㎏당 4343원으로 올랐다. 오렌지(3795원→5071원) 쇠고기(1만6014원→2만4168원) 돼지고기(8400원→1만2567원)도 모두 값이 올랐다(표 참조). 수출국의 수출업체가 FTA로 인한 관세 인하 효과를 염두에 두고 미리 수출 가격을 올렸거나 국내 유통업자들이 대폭 중간마진을 높였기 때문이다.
포도의 경우 FTA 발효 이후 중간 수입유통업자의 마진은 도매에서 23억원, 소매에서 53억원 늘어났다. 결국 수입산 포도 시장에서는 수입유통업자의 유통마진 증가가 관세 인하 효과를 상쇄하면서 소비자가격 인하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렌지 쇠고기 돼지고기도 FTA 발효 이후 유통업자의 마진이 배 정도 뛰었다.
FTA로 인한 농산물 수입은 소비자가격을 끌어내리지 못했고 국내산 수요 잠식과 가격 하락으로 우리 농민이 피해를 보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농경연은 “FTA로 인한 수입 농산물의 관세 인하 효과가 상당 부분 수입유통업자의 유통마진에 흡수됐다”며 “수출업체의 독점 지위가 높을 경우 관세 인하 조치 이후 특별한 가격 상승 요인이 없음에도 가격이 관세 인하 폭만큼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최근 5년 동안의 수입 농산물 유통마진 비중은 포도가 54%, 오렌지는 48.4%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산 농산물의 유통마진(40% 안팎)보다 높은 비중이다. 농산물 수입은 다수의 수입업체와 소수의 대형마트가 주도하고 있으며 유통마진의 50∼60%가 이윤인 것으로 추정된다.
농경연은 “유통업체의 시장지배력이 강할 경우 유통업체는 수입원가와 판매가격의 변화 없이 유통 이윤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수입유통업체 및 대형마트의 수입 및 판매 물량의 조절과 초과이윤 취득을 통한 가격 결정 등 독과점적 폐해가 심한 부문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통한 규제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직거래 확대, 생산자 단체를 통한 유통 계열화, 수급관리 체계화, 도매시장 효율화 등을 골자로 하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대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국내산 농산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FTA 관세 인하 혜택을 받는 수입 농산물은 사실상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