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 승부조작’ 폭로 후 투신, 무슨 일이…
입력 2014-03-14 04:06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의 전 프로게이머가 소속팀 감독의 승부조작 의혹을 폭로하고 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졌다. 프로게임단 AHQ코리아 소속 선수였던 천민기(22)씨는 13일 오전 5시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승부조작에 연루됐다.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했는데 이제 무덤이 코앞이니 털어놓겠다”는 글을 남기고 부산 북구 한 아파트 12층에서 몸을 던졌다. 다행히 재활용품 수집창고 지붕으로 떨어져 목숨을 건진 그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천씨는 투신 직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AHQ 승부조작 자백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소속팀 감독이 선수들에게 “온게임넷(케이블TV 게임 채널)의 주문이니 대기업 팀에 져줘야 한다”고 요구해 대회에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두 팀에 모두 선취점을 내주며 패했는데 이 모든 일이 감독의 거짓말 때문에 빚어졌다는 내용이다.
천씨는 “온게임넷의 주문은 없었고 실제로는 사설 토토(승부를 맞히는 복권)로 돈을 벌기 위한 감독의 거짓말이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 “감독의 지시에 의문을 품고 AHQ 대만 본사와 연락한 결과 AHQ코리아라는 팀 자체가 조작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대만 본사는 AHQ코리아에 이름과 장비를 지원해줬지만 팀 창단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한국인 직원을 고용한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감독은 선수들이 진실을 알아차린 후에도 거듭 승부조작을 강요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토토로 한방 크게 치고 빠지자”는 말도 했다고 천씨는 주장했다. 선수들이 이를 거절하자 감독은 시즌 중간에 팀을 해체하고 숙소도 없앴다. 결국 AHQ코리아 게임단은 창설 두 달 만에 별다른 이유 없이 해체됐다. 국민일보는 사실 확인을 위해 감독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대책팀을 꾸려 본격적인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협회는 AHQ코리아 소속이었던 다른 선수들을 상대로도 진상 파악에 나서는 한편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천씨 투신 경위를 조사 중인 경찰은 승부조작 여부와 감독의 공갈·협박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이다.
이날 서울 용산 e스포츠 상설 경기장에서 LOL 마스터스 경기를 참관한 전병헌 한국e스포츠협회장(민주당 원내대표)은 “지금까지 조사 결과 감독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돼 형사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클린 e스포츠 환경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게임 승부조작 의혹은 처음이 아니다. 검찰은 2010년 유명 온라인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을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고 불법 도박사이트에서 거액의 배당금을 챙긴 일당을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함께 기소된 2명의 프로게이머는 건당 200만~650만원을 받고 일부러 경기에서 져 준 것으로 조사됐다.
Key Word-리그오브레전드(LOL)
미국 게임업체 라이엇 게임즈가 2009년 제작한 온라인 게임. 국내에선 2011년 12월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5명씩 팀을 이뤄 상대팀 진영을 먼저 파괴하면 승리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지난 1월 기준 세계 월 이용자가 6700만명에 달한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