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은 내면 성찰·고백의 도구였다… 도널드 프리드먼의 ‘작가의 붓’

입력 2014-03-14 01:32


왜 세계적인 작가들은 펜으로도 모자라 붓을 들어야 했을까. 변호사 출신의 미국 소설가 도널드 프리드먼이 쓴 ‘작가의 붓’(아트북스)은 안데르센부터 W. B. 예이츠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작가 100명이 남긴 200여 점의 회화와 드로잉, 그리고 조각 작품을 곁들여 문학과 예술의 근원이 다르지 않음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프리드먼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내게 작가의 꿈을 심어주었던 이들 작가들의 또 다른 놀라운 재능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엔 그가 커트 보네거트, 톰 울프, 존 버거, 존 업다이크 등 저명한 작가 겸 화가들과 진행했던 미발표 인터뷰와 그가 수십 년 동안 연구해온 예술 분야의 지식이 바탕이 되었다.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는 이 책의 주인공인 상처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죄책감과 분노, 애착, 절망, 그리고 그밖에 상실감으로 생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수단이자 고통에서 의미를 얻는 방법인 듯하다. 이들은 미술을 통해 상처를 떨쳐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그 상처가 전이되거나 심신이 약화되지도 않았다. 각각의 시, 각각의 드로잉은 압축된 채 보존되어 있는 기억 위에 덮인 굳은살이다.”(‘들어가는 말’)

표현 수단은 다르지만 글과 그림 모두 예술적 감흥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둘의 근원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예술적 감흥의 발로가 언어에 의한 것이라면 글이 되고 형상을 빌리면 그림이 되기 때문인데, 세계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 속에 가려진 작가들의 삶은 각기 다른 아픔으로 점철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들의 예술 활동은 결국 아픈 조개가 품는 진주와 같은 것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인종, 성별, 국적을 가지고 서로 다른 적성과 직업, 환경 속에서 살았지만 거의 모두 ‘상실’과 ‘내면의 상처’로 고통 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일반인이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상처들이 작가들에게는 예술적 발현으로 표출된 셈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 중에는 괴테, 나보코프처럼 문학과 예술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가들도 있지만 도스토옙스키, 마야콥스키, 가오싱젠처럼 정치적 억압으로 고통 받은 이들도 있다. 귄터 그라스와 커트 보네거트는 전쟁 포로로 억류된 적이 있었고, 듀 모리에와 헉슬리는 시력 상실이라는 육체적 고통에 힘들어했다. 실비아 플라스, 베아트릭스 포터, 키플링 등은 어린 시절 학대받았던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았다. 결국 작가들이 손에 든 ‘붓’은 내면 성찰과 고백의 도구였던 셈이다.

예컨대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19세기 소설가들 가운데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작가 중 하나인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원고에 교회 지붕이나 다양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을 그려 넣거나 캘리그래피를 연습하곤 했다. 하지만 그가 주로 그린 것은 초상화였다. 자화상, 노승과 어린 수도승들, 표트르 1세 밀랍 조각, 그리고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얼굴들이 남아 있다. 그중 ‘백치’의 주요 등장인물의 스케치는 특기할 만하다.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는 자신을 “신중한 성격의 미술가이며 자수성가한 작가”라고 설명한다. 1947년에 수습 조각가로 1년을 보낸 후 그라스는 48년부터 52년까지 뒤셀도르프의 예술 아카데미에서 조각과 그래픽아트를 공부했고 53년에 베를린으로 옮긴 뒤 예술대학교에서 조각 공부를 계속했다. 그런 만큼 그라스의 석판화 ‘파리가 있는 자화상’은 전문적인 화가의 드로잉을 뛰어넘는 예술적인 감각으로 충만해 있다. 결국 이들 작가들이 손에 든 붓은 내면 성찰과 고백의 도구였던 셈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