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움직임이 우리를 살릴 거야
입력 2014-03-14 01:36
“나는 오랫동안 예술을 알리기 위해 삶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암에 걸린 뒤로 나는 삶을 알리기 위해 예술을 이용해 왔습니다.” 올해로 94세, 전설적인 무용·안무가이자 세계 현대무용계에서 최고령자이기도 한 안나 할프린의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이다. 지난 주말 바로 안나 할프린의 인성교육과 예술치유에 대한 소박하지만 배움과 공감으로 충만했던 페스티벌이 열렸다.
안나는 마사 그레이엄, 도리스 험프리 등과 함께 현대무용의 부흥기를 이끌었지만 그들과는 방향이 달랐다. 뛰어난 누군가의 움직임을 획일적으로 따라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으며, 테크닉 이전에 우리 모두의 안에 있는 본질적이 움직임에 보다 관심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양한 예술가, 철학자들과 교류하며 예술 실험을 펼쳐나갔다. 그러던 중 암이 발병하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몸의 각 부분과 그곳의 움직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삶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춤, 움직임의 예술을 통해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이를 다시 예술적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일에 몰두하며 일반인의 삶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안나는 고령에도 샌프란시스코 타말파 인스티튜트를 통해 여러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안나의 영향이었을까. 수줍은 듯한 아저씨들의 그루브, 머리는 이미 반백이지만 움직임만은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 저마다 누군가를 의식하는 춤이 아닌 내 안의 나를 의식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댄스 한판이 펼쳐졌다. 갓난아이를 안은 엄마가 덩실덩실 리듬을 타자 아기 얼굴에 까르르 미소가 번진다.
신이 나 팔다리를 흔들고 고개를 까딱이는 아이를 보며,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잊고 나의 몸과 마음을 가두고 살았던가 싶었다. 생존을 위한 긴장,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대한 두려움,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도시생활의 소란스러움에 점령당한 몸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숙제가 아닐까.
학창시절 율동을 해야 하는 때면 늘 제일 못 따라하는 ‘구멍’이 되어 혼나기 일쑤였고, 춤추는 곳에 가면 두 다리가 딱 바닥에 붙은 듯 엉거주춤 불안해하던 나였다. 일을 하며 다른 이들의 심경을 헤아리는 데 바쁘다 보니 늘 긴장한 병사 같았다.
땀이 고일 만큼 춤을 추고 나니 온 몸으로 생생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순간 벽면에 붙어 있는 플랜카드에서 미소 띤 안나 할프린이 이렇게 속삭여왔다. “너만의 춤을 춰봐. 마음껏, 자유롭게!”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